[영림원CEO포럼]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경영의 원칙 ’정 반 합’

2 days ago 3

오윤희 조선비즈 국제부장, 205회 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

오윤희 기자/조선비즈 국제부장 오윤희 기자/조선비즈 국제부장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업계 최고가 된 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첫째 기본을 지키며 성실하고 우직하게 교과서적인 길을 걷는 기업(正), 둘째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기업(反), 셋째 그 두 가지를 병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合)이다.”

오윤희 조선비즈 국제부장이 8일, 205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경영의 원칙, 정 반 합’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 부장은 이번 강연에서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서 글로벌 기업 CEO와 세계적인 경영 전문가들을 대면 인터뷰하며 접한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들을 헤겔의 정반합 이론에서 이름을 딴 정, 반, 합 기업으로 분류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사례와 성공 비결을 소개했다. 또 경영자가 이 정 반 합 기업에서 어떤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 이들의 성공사례를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 경영에서 ‘정반합’이 필요한 이유


흔들리는 진자는 좌우를 왔다 갔다 이동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정반합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반합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변증법 이론에서 처음 소개한 것이다. 헤겔 자신은 ‘정반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후세 사람들이 그의 변증법 이론을 도식화해 정반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헤겔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 이것이 ‘정’이며, 이후 시간이 지나 이에 반대가 되는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나오게 되면 이것이 ‘반’이며, 정과 반이 서로 갈등과 대립을 하다가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하게 되는 것을 ‘합’이라고 했다. 헤겔은 이렇게 정반합이 서로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다가 결국 어떤 조화의 상태를 이뤄가는 과정으로 역사는 진행된다고 얘기했다.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을 보면 이런 정반합의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사에서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왕 찰스 1세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하지만 크롬웰의 통치가 독재로 흐르면서 왕정복고가 일어났고 이후 오랫동안 갈등 끝에 지금의 입헌군주제를 확립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에 등장하는 노론, 소론, 남인, 서인은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결국에는 영조가 탕평책을 발표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뤘다.

정반합의 원리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에도 이런 정반합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어도어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던 민희진 대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걸그룹을 기획할 때 정반합의 이론에 따라서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 대표는 소녀시대를 선보일 때 화장기를 빼고 친근하면서 담백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소녀시대가 주류로 자리잡게 되자 이와 상반되는 이미지의 걸그룹으로 섹시하고 멤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f(x)를 등장시켰다. 소녀시대와 f(x) 둘 다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된 이후에 새로 선보인 걸그룹은 레드벨벳이었다. 레드벨벳은 소녀시대와 f(x)의 ‘합’으로 볼 수 있는데 f(x)보다 친근하면서 소녀시대보다는 완벽한 이미지를 지향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뉴진스가 처음에 나왔을 때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은 블랙핑크였다. 블랙핑크는 멤버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하고 센 캐릭터들이었다. 이 블랙핑크에 대한 반의 개념으로 선보인 것이 바로 뉴진스였다.

몇 년 전에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물건들 예를 들면 필름 카메라라든지 지금은 필기도 잘 하지 않는데 몰스킨 같은 고급 필기 기구들이 디지털에 대한 반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 역시 정반합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례다.

나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라는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성공한 여러 글로벌 CEO들을 만나보고 느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성공하는 기업들은 어떤 산업이든 불문하고 ‘정, 반, 합’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이라는 것은 기본기를 가장 철저하게 교과서적으로 지키는 기업이며, 반은 기존에 없던 참신한 생각으로 블루오션을 새로 만든 기업이다. 그리고 합은 이 정과 반을 절충해서 제3의 길을 간 기업이다. 헤겔의 정반합 이론은 정과 반의 대립을 한 단계 더 승화시킨 합을 가장 최상의 가치로 보았지만 나는 합으로 분류한 기업들이 정이나 반으로 분류한 기업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편의상 정반합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을 따름이다.


◆ 정: 기본에 충실하라…정 기업 사례 #1: 진심을 전달하는 기업 ‘젠자임’


먼저 정에 해당하는 기업으로 젠자임을 들 수 있다. 젠자임은 희귀병 치료제를 만드는 기업이다. 희귀병은 영어로 ‘orphan disease’로, 말 그대로 고아병이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정말 동떨어져 있는 병인 만큼 유사한 질병과의 관련성을 찾기도 매우 어렵다. 제약회사가 약 하나를 개발하는데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젠자임이 속한 희귀병 치료제 시장은 그 규모가 너무 작다. 그런데 젠자임이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가에는 사연이 있다. 젠자임은 1981년에 미국 보스턴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빌딩에서 시작했다. 그때 젠자임은 단백질 효소를 개발해 실험실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문을 연 지 얼마 안돼 브라이언이라는 아이와 그 부모가 찾아왔다. 브라이언은 9살짜리 아이로 고셰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고셰병은 동유럽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이 발병하는 희귀병인데 우리나라에는 약 30명, 미국에도 약 2500명 정도밖에 없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몸에서 단백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몸 안에 그대로 쌓여서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결국에는 운동 능력을 잃어버리고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의 부모가 병원이란 병원을 다 돌아다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찾게 된 곳이 바로 젠자임이었다. 이 브라이언이라는 소년을 본 순간 젠자임의 창업자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키가 83cm였는데 복부가 너무 부풀어 올라서 허리둘레가 무려 63cm에 이르렀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계속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창업자는 이 아이를 위해 치료제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몇 년의 노력 끝에 1991년 ‘세레데이즈’라는 고셰병 치료제를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고셰병 치료의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다. 이 치료제 개발은 젠자임이라는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계기가 됐다. 젠자임의 창업자는 희귀병 치료제만을 개발하는 한 길을 꾸준히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왜 협소한 시장을 타깃으로 하느냐며 우려도 많았다. 그때마다 당시 창업자는 그 소년을 못 보았으면 몰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얘기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젠자임은 희귀병 치료제 개발이라는 본래의 사업 목적 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다행히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젠자임은 고객 중심주의 회사로도 유명하다. 젠자임은 언젠가 공장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고심 끝에 그 공장에서 생산한 모든 약품을 전량 폐기했다.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젠자임의 상품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조금의 오차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이런 결정을 했다.

또 2010년 칠레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는 젠자임의 약품을 쓰는 어린 환자들이 많아 젠자임의 약품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으면 환자들의 생명이 위급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진으로 교통망이 전부 무너진 상황에서도 젠자임의 직원들은 직접 차를 몰고 4천 킬로미터를 달려서 직접 환자들에게 약품을 배송했다.

흔히 경영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말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젠자임의 경우 고객들의 니즈는 아주 확실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확고한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젠자임은 교과서적인 정도를 밟아 나갔음에도 성공적인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실적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약품 제약 업체를 조사하는 어느 시장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희귀병 시장 약품 시장의 규모는 1560억 달러였으며, 1년 만인 2023년에는 1730억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2028년에는 3천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금 모든 산업이 저성장 기조를 걷고 있는 와중에 젠자임의 사례는 매우 특이하다. 젠자임의 전 CEO 데이비드 미커는 “현재 치료제가 없는 희귀병은 7천여 가지에 달하는데 그 중 치료약이 나와 있는 것은 200~300개밖에 없다. 그만큼 대단한 블루오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정 기업 사례 #2: 한 우물 파기로 성공한 ‘테트라팩


두 번째로 소개할 기업은 테트라팩이다. 테트라팩은 1961년 설립된 스웨덴 기업으로 식음료 용기 제조 부문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 아마 가정의 냉장고에는 테트라팩의 용기가 한두 개 정도 들어있을 것이다.

테트라팩이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핵심 기술인 진공 포장 기술에 있다. 진공 포장 기술은 공기가 용기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해서 식음료를 오랫동안 상온에 놔둬도 썩지 않고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개발됐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우유를 유리병에 담아서 수레에 싣고 집집마다 배송했는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런 식의 배송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유럽에서 우유는 필수 불가결한 식자재이다. 테트라팩의 창업자는 ‘우유가 상하지 않는 용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전통 소시지를 만드는 기법에 착안해 진공 포장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테트라팩이 창업했다.

테트라팩은 1961년 설립 이후 꾸준하게 식음료 용기 제조라는 한 길만을 걸어오고 있다. 지금처럼 변동이 심한 시대에 한 우물만 파면 망하기 십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테트라팩은 한 우물만을 꿋꿋하게 팠고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치열할 정도의 꾸준한 기술 혁신이며, 또 하나는 글로벌화이다.

식음료 용기 만드는 데 무슨 기술 혁신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테트라팩은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노약자들 같은 경우에는 악력이 약하니까 손에 힘을 덜 들여도 쉽게 마개를 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용기째로 음료를 마실 때 고개를 뒤로 넘기고 마시는데 어떻게 하면 목 넘김이 좋은지를 인체 공학적인 방법들까지 전부 다 연구해 조금씩 용기에 적용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기술이 축적돼 테트라팩은 식음료 제조 용기 시장에서 1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테트라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비결은 글로벌화이다.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일수록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다. 성균관대 유필화 교수는 히든챔피언의 성공 전략으로 전 세계 강소 기업들을 소개할 때 세계화가 꼭 필요한 전략이라고 얘기했다. 테트라팩은 이 글로벌 전략을 아주 철저하게 따랐다. 또 각 지역으로 진출할 때 현지 사정에 맞게 각각 다른 식으로 현지화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에는 고령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좀더 쉽게 마개를 열 수 있는 용기들을 개발해 공급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갖춰져 있고 냉장 보관에 익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온에서 테트라팩의 용기를 놔둬도 괜찮다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상온에 놔둬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과즙이나 요거트 등의 음료 용기를 먼저 내놓았으며 나중에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테트라팩에 익숙해졌을 때 우유 용기를 공급했다. 그리고 중국에 진출할 때는 우유 마시기 캠페인을 펼치며 시장을 개척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는 우유 소비가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우유를 마시지 않다가 성인이 돼서 갑자기 마시면 배탈이 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테트라팩은 우유 마시기 캠페인을 진행하면 우유를 마시고 성장한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꾸준히 우유를 마실 것이며, 그러면 우유 시장은 커질 것이고 우유 용기도 잘 팔릴 것이라고 먼 미래까지 바라보는 전략을 세워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 정 기업 사례 #3: 일본 덕무산업…신발 한짝, 짝짝이도 팔아


세 번째 정의 기업으로 소개할 기업은 일본 덕무산업이다. 이 기업은 특이한 것이 짝짝이 신발을 팔고 있다. 사람의 인체라는 것은 사실 정확하게 대칭이 되지 않는다. 오른발과 왼발도 조금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기성품을 사려고 할 때 한쪽 발은 235, 한쪽 발은 240으로 신발을 살 수는 없다. 젊은 시절에는 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특히 당뇨나 류머티즘 같은 질병을 앓게 될 경우에는 발 크기의 차이가 커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게 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덕무산업은 작은 시장이지만 이러한 시장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짝짝이 신발을 판매하게 됐다. 어떤 식으로 판매를 하는 게 좋을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가 텔레마케터 방식으로 고객들이 직접 주문을 하면 상담을 하고, 철저히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 주문 제작해 배송하는 방식으로 신발을 제조해 팔고 있다.

덕무산업 역시 고객층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고객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맨 처음에 고객들의 주문을 받을 때도 니즈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오랜 기간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불편한 점이 없는지 개선해야 할 상황은 없는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고객들의 생일이라든지 해가 바뀔 때마다 연하장 같은 것을 매년 보내면서 고객들을 관리하고 있다, 한두 해 보내고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내 고객들의 자녀가 저희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연하장이나 생일 카드를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정도이다.


◆ 반: 남들과 다른 전략을 구사하라…반 기업 사례 #1. 건강에 좋은 콜라 ‘이요시 콜라’


반에 해당하는 기업 중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곳은 이요시 콜라이다. 이요시 콜라는 2018년에 창업된 일본 기업이다. 창업자는 고바야시 콜라인데 물론 콜라가 본명은 아니다. 멀쩡한 이름이 있었는데 자신의 인생을 콜라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아예 이름도 콜라로 개명을 했다. 고바야시 콜라는 홋카이도 농대를 졸업하고 도쿄대 농대에서 석사를 딴 후 광고 회사 영업사원으로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직장 일은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재미없는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보람차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취미를 갖게 됐는데 그 취미가 바로 콜라였다. 어린 시절부터 콜라를 좋아했으며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회식 자리에서 술을 잘 못 마셔 콜라를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콜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오리지널 콜라 레시피가 온라인에 있었는데 고바야시 창업자는 그걸 본 순간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래 콜라는 건강에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오리지널 레시피 제조법에 따라 콜라를 만들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콜라 맛과는 20% 정도 차이가 났다. 고바야시 창업자는 어떻게 하면 콜라 맛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여러 실험을 했다. 정체돼 있던 그의 실험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감의 원천은 창업자의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한의원이었다. 고바야시 창업자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자주 놀러 갔다. 한의원에서 맡았던 계피, 정향, 생강 등 천연 재료들의 향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콜라에 시험삼아 계피나 인삼 같은 한방 재료를 가미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콜라와 비슷한 맛을 마침내 구현해 낼 수 있게 됐다. 콜라를 직접 만들어 직장 동료들에게 돌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콜라 사업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푸드 트럭을 사서 콜라를 싣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나가나 싶더니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2020년 코로나19였다. 이요시 콜라는 원래 푸드 트럭에서 인근 오피스 빌딩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사했는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장려되면서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이요시 콜라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일본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오후 7시 넘어 주류를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업주들은 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알콜 음료를 찾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이요시 콜라를 찾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이요시 콜라는 새로운 판로를 찾게 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2년 말 기준 이요시 콜라의 판매량은 100만 병이 넘는다. 한국, 대만 등 아시아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에도 콜라를 해외 배송하고 있다. 이요시 콜라가 크래프트 콜라 바람을 일본에서 일으키면서 비슷비슷한 수제 콜라들이 등장했고 그래서 일본에서는 수제 콜라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고바야시 창업자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크래프트 콜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두 가지로 정의를 해줬다. 첫째 천연 재료로만 만들 것, 둘째 만드는 사람의 장인정신이 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코카콜라와 펩시라는 두 개의 대기업 기성품이 세계 콜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인정신이 깃든 콜라’라는 말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콜라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이요시 콜라는 처음부터 독특한 컨셉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독특한 콜라 음료를 연달아 만들어 내놓았는데 예를 들어 우유가 들어간 밀크 콜라, 따뜻하게 데워서 먹는 콜라 등이다. 콜라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엎은 이요시 콜라는 크래프트 콜라라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 반 기업 사례 #2. 태양의 서커스


두 번째 반 기업의 사례는 너무나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이다. 과거의 서커스는 동물이 주를 이뤘다. 곰이 재주를 부리거나 맹수의 입에 사람 머리를 집어넣는 위태위태한 퍼포먼스를 했다. 하지만 이 서커스의 주역이었던 동물은 서커스단이 적자를 면치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동물의 사료값과 훈련 및 유지비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서커스단을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공감대에서 탄생한 것이 태양의 서커스였다. 태양의 서커스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은 길거리에서 불을 뿜는 공연을 하던 거리 예술가 기 랄리베르테였다. 그는 기존에 서커스의 주역이었던 동물을 쇼에서 없애버리고 대신 뮤지컬, 마임, 댄스, 코미디, 패션 등 다른 영역에서도 재미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뽑아와서 전부 다 버무려 아트서커스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이 아트서커스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이러한 혁신에서 시작된 태양의 서커스는 레퍼토리도 매우 혁신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레퍼토리가 나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스베이거스의 대표 공연으로 자리잡은 물을 소재로 한 ‘오 쇼’, 불을 소재로 한 ‘카 쇼’이다. 타이타닉, 아바타라는 영화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콜라보를 해서 영화 아바타를 무대로 옮겨놓은 ‘아바타 토룩’ 공연도 호응을 얻었다. 또 마이클 잭슨처럼 유명 음악가의 음악을 소재로 한 공연 등 아주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태양의 서커스가 가진 혁신의 힘이다.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도 많은 굴곡을 겪었다. 태양의 서커스가 유행하면서 비슷비슷한 아류 기업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가 2015년에 미국의 사모펀드 TPC 캐피털과 중국의 푸싱 그룹에 인수됐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예정돼 있던 모든 공연을 취소하면서 단원의 95%를 내보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했을 정도로 기업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2014년, 2022년에 태양의 서커스 다니엘 라마르 CEO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2022년에 그는 “코로나19 당시만 해도 단원들을 다 내보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2022년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공연 업계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단원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단원들의 거의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태양의 서커스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던 것이 언젠가는 이 서커스를 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대비해 자발적으로 신체를 단련해왔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2022년에 극적으로 공연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2022년, 2023년는 한국에도 왔다. 그때 들고 온 공연이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적인 레퍼토리 중의 하나였던 ‘알레그리아’를 업데이트한 ‘뉴 알레그리아’였다.

태양의 서커스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피할 수 없는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살아났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 서커스 CEO는 “태양의 서커스가 여러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인 DNA와 브랜드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개가 없었으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블루오션을 만들어낸 대표 기업이면서 아직까지도 계속 혁신하면서 반의 전략을 잘 지키고 있는 기업이다.


◆ 반 기업 사례 #3. 한국 웹툰


한국의 웹툰 역시 반에 해당하는 사례다. 온라인을 뜻하는 웹과 만화(카툰)에서 이름을 따온 웹툰은 한국에서 탄생한 고유한 문화 장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라고 하면 일본이 종주국이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일본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 바로 한국의 웹툰이었다. 그전까지 만화를 웹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웹툰은 세로로 화면을 내리면서 읽는 방식인데 일본 만화의 경우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읽어내려가는 독특한 구조여서 스마트폰에서 보기가 약간 힘들다.

한국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데다 IT 강국이며, 빨리빨리 문화는 웹툰 제작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웹툰은 연재 기간이 매우 빨라야만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볼 수 있다. 한국 웹툰은 이 요건을 잘 충족하면서 만화는 종이로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웹상에서도 볼 수 있다는 컨셉으로 만화 시장을 개척했다.

여기에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열심히 몇 년간 노력해서 세계 시장을 뚫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 웹툰이 전 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고 웹툰을 소재로 한 여러 드라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22년도에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웹툰이 어떻게 만화 종주국인 일본 망가의 아성을 위협하나’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한국의 웹툰은 남다른 발상과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합: 끊임없이 변화하며 제3의 길을 찾아라…합 사례 기업 #1. 더현대 서울


합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먼저 더현대 서울이 있다. 더현대 서울은 이름부터가 조금 파격적이다. 보통 백화점 이름을 지을 때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신세계 백화점 본점 이런 식으로 지역명이 뒤에 따라붙는데 더현대 서울은 지역명을 떼버렸고 백화점이라는 이름조차 떼버렸다. 백화점이지만 백화점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더현대 서울은 면적의 49% 정도를 물건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조경 및 고객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실내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로 여의도 공원을 7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조성했다. 뜬금없이 백화점에다 이런 공간을 마련했냐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됐다. 실내에서 편하게 녹음이 우거진 것을 보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여기서 쉬어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옆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면 거기 가서 구경도 한다.

여의도라는 곳은 오피스 지역이기 때문에 주말에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백화점은 고객들이 주말에 가장 많이 찾아오는데 이런 여의도에 백화점을 여는 것 자체가 실책이 아니냐는 얘기들도 있었다. 그런데 더현대 서울은 이런 선입견을 깼다. 더현대 서울은 이런 사운즈 포레스트 말고 갤러리도 있어 이 갤러리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더현대 서울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팝업 스토어를 상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팝업 스토어는 잠깐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다. 더현대 서울은 팝업 스토어를 1년 내내 종류를 바꿔가면서 운영한다. 더현대 서울의 디지털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2년간 더현대 서울이 진행한 전체 팝업 스토어는 321개에 달했다. 성공한 팝업 스토어로는 에버랜드의 푸바오 열풍을 이어받은 ‘푸바오의 집들이’, 약 200만명의 유튜버 구독자를 보유한 ‘빵빵이의 일상’ 속 캐릭터 빵빵이를 테마로 팝업 스토어, 그리고 9인조 소년 밴드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팝업 스토어, 중장년층의 향수를 겨냥한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더현대 서울에 놀러 와서 팝업 스토어나 이벤트를 사진으로 찍고 SNS에 올려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더현대 서울은 MZ 세대들의 놀이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크게 성장을 했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이지만 단순한 백화점이 아니다. 백화점이라는 업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체험이라는 새로운 놀이 요소를 가미했다. 더현대 서울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을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고 2010년대 들어 티몬, 쿠팡 등 소셜커머스까지 활성화되면서 소비자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길을 돌렸다. 실제로 백화점은 오랜 기간동안 매출이 하락세였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를 두고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가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오프라인 매장을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더현대 서울은 유통과 체험이 결합된 매장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쇼필즈’라는 유통 매장은 고객들이 물건을 구매하면서 특별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곳곳에 예술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브랜드 매장이 미로처럼 펼쳐지는 이곳은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놀이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예약제로 운영되는 가이드 투어 ‘하우스 오브 쇼필즈’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매장 곳곳을 다니며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시험 사용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벤트다.

또 비슷한 사례로 맨해튼의 완구점 ‘캠프’는 테마에 따라 바뀌는 체험 공간에서 주 고객인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런던의 대표 상징물인 빅벤 주위에 영국과 관련된 제품을 배치해 아이들이 직접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이런 컨셉으로 꾸며놓은 놀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다 놀고 난 이후에 피규어나 장난감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더현대 서울은 다양한 물건을 구비하고 판매하는 백화점 업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매장을 문화 체험 공간으로 변신하는 전략으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브랜드 즉 합을 이끌어냈다


◆ 합 사례 기업 #2. 슈나이더 일렉트릭


또 다른 합의 사례로 얘기하고 싶은 기업은 슈나이더 일렉트릭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1836년에 설립된 프랑스 기업으로 처음에는 철강을 생산하던 전형적인 굴뚝기업이었다가 19세기 후반에 변압기와 발전기 등 전기 설비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기업이 너무 방만해서 적자도 많이 났고 계속 끌고 갈 수 없었던 사업 분야도 많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사업들을 전부 매각하고 알짜인 전기 사업만 남겨두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그동안 몇 대에 걸쳐 가족 회사 형식으로 운영되어 온 슈나이더는 방만한 경영이 가족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자각하며 이때 가족 경영 체제를 그만두고 전문 CEO를 도입해 CEO 경영 체제로 탈바꿈했다. 슈나이더는 이렇게 첫 번째 대수술을 하면서 철강 기업에서 전기 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두 번째 대수술을 했다. 두 번째 수술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전기에서 에너지 관리 및 제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변신이 기업의 존폐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면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진행됐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전기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뀌게 된 것은 고객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전기 공급을 하는 고객사로부터 전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요청하는 건수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고객의 니즈라는 생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됐으며, 이것이 오히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하에 소프트웨어 쪽으로 사업을 다시 바꾸게 됐다

기업의 변신이라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잘못했다가는 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 변신이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렇게 두 번의 대수술을 겪었음에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그 변하지 않는 바탕에서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변신을 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전기를 남겨놨으며, 두 번째 역시 핵심이 되는 전기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에 대규모 수술에도 불구하고 업의 정신을 그대로 살릴 수가 있었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고 있다.

나는 장 파스칼 트리쿠아 슈나이더 일렉트릭 CEO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의 변신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전기 기업이다 보니 에너지 효율에 대한 주문이 많았고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됐다. 우리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판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제품이 아닌 해결책을 판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변신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컬럼비아 경영대 리타 맥그래스 교수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처럼 경영이 급물살을 타는 시대에 기업들은 마치 파도 타기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고 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되는 기업이다.


◆ “결코 안 된다고 말하지 마”


지금까지 정 반 합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살펴봤다. 여기에서 인사이트 세 가지를 뽑아봤다.

첫 번째는 ‘Never Say Never’이다. 직역하면 ‘결코 안 된다고 말하지 마’이다. 오늘날 트렌드가 너무나 빨리 변하다 보니 기업들이 유행을 쫓기에 급급한 사례들을 많이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기업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트렌드만 쫓아가다 보면 강점을 잃어버리는 착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당장의 트렌드나 유행과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나의 사업이 남들과 차별화되고 또 나만의 확실한 강점이 있다면 트렌드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그 예로 ‘비 리얼(Be Real)’이라는 소셜 미디어와 충무로 고래사진관을 들어보겠다.

먼저 비 리얼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SNS 앱이지만 2019년 프랑스에서 출시돼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앱은 하루에 한 번씩 무작위로 알림을 보낸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2분 안에 즉석 촬영한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제한 시간 내 사진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보정할 수 없고 필터링을 돌릴 수도 없고 메이크업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사실 SNS라는 게 거칠게 얘기하면 허영심의 장이다. 이를테면 이런 곳에 가봤다, 맛있는 거 먹었다, 이런 공연을 봤다 등 뭔가를 자랑하는 공간이지 나는 오늘도 실패했고 상사한테 꾸지람들었고 시험에 떨어졌다는 등을 올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SNS를 오래 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기존 트렌드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비 리얼이다. 비 리얼은 허영심의 홍수 속에서도 내 모습을 찾고 싶다라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SNS의 취지에 잘 맞지 않는 이 앱이 소수의 매니아 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독특한 자신만의 차별화 요소가 가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에 있는 고래 사진관은 입구에 들어가면서부터 필름 카메라들이 전시돼 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본인이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디지털에 환멸을 느낀 MZ세대들이 많다. 또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인화한 사진을 바로 스캔해 SNS에 올릴 수 있는 공간까지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소수 마니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해외 여행 잡지 같은 데서 한국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 “너의 강점을 알라”


두 번째는 ‘너의 강점을 알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개할 기업은 딥시크와 비야디(BYD)이다.

딥시크는 올해 들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중국의 생성형 AI다. 딥시크는 미국의 AI 칩 규제로 인해 하드웨어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다. 딥시크는 이런 불리한 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일반적으로 AI 프로그래머들이 AI를 개발할 때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쿠다(CUDA)라고 한다. 쿠다는 배우기가 쉽고 보편성이 있지만 GPU를 많이 잡아먹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딥시크는 PTX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디시크를 개발했다. PTX는 배우기가 어려운 언어여서 일반적인 AI 개발자들은 이 언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대신 GPU를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하드웨어에 주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딥시크는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꿔서 독특한 AI를 개발한 사례다. 이를테면 구하기 쉬운 가성비 좋은 소재를 셰프들의 손맛을 살려 먹을 만하게 만들어 놓은 가성비 좋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비야디는 원래 배터리 제조 회사로 2000년대 초반에 모토로라. 노키아 같은 휴대폰 기업에 배터리를 납품했다. 그러다가 외연을 확장해 전기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 처음에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어느 모터쇼에 비야디의 전기차가 소개됐을 때 미국의 자동차 전문가는 이런 차가 독일이나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비야디를 비웃었다. 그런데 비야디는 지금 테슬라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

비야디가 매우 빠른 시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다 특히 획기적인 배터리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는 매우 오래가는 배터리로 비야디의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비야디는 자신의 고유한 강점에다 다른 장점들을 덧입혀 사업을 확장시켜 제3의 길을 걸어간 합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류 ‘왜’


세 번째 인사이트는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는 왜(why)’라는 것이다. why는 내가 그 일을 하는 뚜렷한 이유이자 목적의식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책을 쓴 마케팅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은 “비행기 개발에 가장 가까이 가 있었던 사람은 새무얼 랭리였다. 그는 육군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비를 받았고, 그레이엄 벨 등 당대의 유력 인사들과 교분이 있었다. 그런 만큼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비행기를 만든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시골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였다. 그 이유는 새무얼 랭리의 why보다 라이트 형제의 why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이먼 사이넥은 이 책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고 또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기업에는 모두 뚜렷한 why가 있다고 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why는 ‘우리는 고객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자’를, 마이크로소프트는 ‘집집마다 PC를’이라는 why를 가지고 있었다. 이 why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고한 why 위에 정을 할지 반을 할지 합을 할지 자신들의 상황과 관점에 맞게 최적의 전략을 구사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게 사이먼 사이넥의 분석이다.

그런데 뚜렷한 why를 가지고 출발한 기업도 시간이 지나고 규모가 커지면 원래의 신념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바로 그때 혁신이 사라지고 기업은 방향성을 잃고 헤맨다. 예를 들어 디즈니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why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런데 전형적인 기업가 스타일인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스의 지휘봉을 맡으면서 why가 퇴색했고 그래서 위기에 몰렸다. 이후 밥 아이거 회장이 디즈니의 why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why는 한 기업 혹은 한 브랜드의 영혼이나 마찬가지다. why 없는 기업은 지속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무엇을’이나 ‘어떻게’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why만은 유지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을 버리거나 바꿔도 why만큼은 기업이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유일한 보루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