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등반학교 이한우 교장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군자와 소인은 공자가 창안한 개념이다. 군자는 군주, 소인은 신하를 의미한다. 군자와 소인은 일을 매개로 연결돼 있다. 군자는 말로 일을 시킨다. 그것이 명(命)이며, 일의 형세를 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소인 즉 신하는 명을 받아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논어등반학교 이한우 교장이 2일 218회 영림원CEO포럼에서 ‘논어(論語)의 군자론, 왜 강명(剛明)한 리더를 위한 제왕학(帝王學)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한우 교장은 “공자의 평생 주제는 리더십으로 논어는 기본적으로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공자는 어떤 신하가 바람직하고 어떤 리더가 바람직하냐를 평생 연구했다”며, “논어에서는 임금다운 임금은 어떻게 신하를 부려 일을 시키고, 신하다운 신하는 어떻게 명을 받아 일을 성사시키는지를 얘기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
◆송나라 주자에 가려져 있던 <논어>의 올바른 해석 = 역사 속에 <논어>를 체화한 지도자가 몇 사람 있다. 첫 번째가 삼국지의 핵심 영웅 조조이다. 조조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간사한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매우 탁월한 지도자로 자기 소명 의식도 있고 인간적인 한계도 있었는데 그가 계속 갈고닦은 게 논어였다. 또 중국의 당 태종이 논어에 아주 탁월했는데 논어에 담긴 공자의 가르침을 통치의 핵심 철학으로 깊이 이해하고 실천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의 태종이 논어의 리더십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삼성 이병철 회장은 “내 서재에 책이 한 권만 남는다면 그것은 논어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 사람들이 논어에서 공통적으로 배우고자 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었지 선비들의 심신 수양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왜 그러한지 <논어집주>를 펴낸 송나라의 주자에 의해 가려졌던 논어가 실제로 어떤 책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강연의 핵심이다.
먼저 한자를 가지고 리더십의 문제를 한번 살펴보겠다. 논어나 주역의 핵심 개념은 ‘정(正)’과 ‘중(中)’이다. 정은 정도(正道) 같은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예를 지키는 것이다. 예라고 하는 건 예법도 되는데 논어에서는 예를 예법보다는 사리(事理)라고 한다. 중은 가운데 중이 아니라 동사로 과녁에 적중하다는 뜻이다. 이 중을 다른 말로 하면 명(命)이다. 명은 일의 형세 곧 사세(事勢)다.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리이며, 다른 하나는 사세다.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가다가 모르는 여자의 손을 잡으면 되는가? 당연히 안된다. 이것이 사리다. 또 모르는 여자가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하면 뭐라도 잡고 살리려고 하는 것은 사세 때문이다.
조직이 탄생하면 상하관계가 발생한다는 게 공자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천지개벽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천지개벽은 천(天) 즉 임금과 지(地) 즉 신하의 관계가 열렸다는 뜻이다. 조직이 탄생하면 그것이 천지개벽이다.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공자에게 하늘은 임금이고 땅은 신하다.
리더는 중하는 사람이며, 정은 신하가 하는 것으로 매뉴얼대로 한다. 중은 리더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중을 시중(時中)이라고 표현했다. 시중은 때라기보다는 상황이다. 상황은 계속 바뀐다. 그 바뀐 상황을 읽어내 새로운 지침을 만드는 것이 리더가 하는 일이다. 상황 결정은 리더가 하는 것이다. 일이 순조롭게 잘될 때는 신하들에게 맡겨두지만 특별한 상황이 늘 발생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하는 말이 명이고 이 명이 사세를 결정한다. AI가 중과 정 가운데 할 수 있는 일은 정 뿐이다. AI가 잘하는 건 신하의 일이지 리더의 일은 전혀 건드릴 수가 없다.
공자는 추(推)라는 말을 강조했다. 공자가 제자들한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예보다도 추였다. 추는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다. 공자는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한다면 다시 가르쳐주지 않았다.
논어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간 ”옛것을 읽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으로 해석한 것은 틀렸다. 온은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뜻으로 이를테면 도서관에 있는 책을 그냥 두면 종이에 불과하며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가서 그 책을 꺼내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온고다. 온기를 불어넣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지신이다. 이런 정도가 돼야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스승이라는 의미다. 스승은 먼저 배운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추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것을 전수할 때 비로소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주제가 딱 하나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하 입장에서 임금은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밖에 없다. 하지만 공자는 사방의 각도에서 본다. 임금 입장에서 임금을 보고 임금 입장에서 신하를 보고 다시 신하 입장에서 신하를 보고 신하 입장에서 임금을 본다. 이처럼 아주 정교하게 군신 관계의 문제를 평생 고민하는 나라를 나라의 도리가 있는 것이라고 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를 임금이 신하 갖고 신하가 임금 같은 엉망진창인 나라라고 했다.
◆공자의 핵심 키워드는 ‘강명한 군주’ = 이번 강연의 제목을 ‘논어의 군자론, 왜 강명한 리더를 위한 제왕학인가?’로 정했는데 그 이유는 공자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명한 군주가 핵심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강(剛)은 세다가 아니라 한결같다는 뜻이며, 명(明)은 사람을 보고 일을 보는 데 밝다는 뜻이다. 명은 총(聰)과 구별된다. 명은 눈 밝을 명이고 총은 귀 밝을 총이다. 회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 명이 중요할까, 총이 중요할까? 명은 내가 보는 시야에 있는 것이며, 총은 내가 가보지 않더라도 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이 훨씬 중요하다.
조선 선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멍청함인데 실제로 선조는 똑똑하기로 따지면 거의 세종급이었다. 선조는 명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군자다운 신하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신하가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게 강이다. 역사 속에는 임금이 아래 사람을 시샘하고 질투해 자기 무덤을 판 예가 수두룩하다. 선조가 그러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보니 당쟁이 생겨났다. 선조같은 임금이 나오면 당쟁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왔다 갔다 하면 바로 밑에서 파벌이 생긴다. 파벌이 안 생기고 공적인 논리가 지배하게 하려면 리더가 명보다는 강을 갖춰야 한다. 이게 전부 조직 운영과 관련된 것이며, 그래서 동양에서는 군주가 권력을 운용하는 방법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담은 학문으로 제왕학이 나왔다.
그동안 논어는 주자에 의해 가려졌다. 이것을 넘어서면 논어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지금도 우리 학교에서는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번 강연의 소주제는 첫째 주역에 담겨 있는 군(君)과 신(臣)의 역할, 둘째 논어의 군신 역할론, 셋째 논어 학이(學而)편의 첫 세 구절의 의미, 넷째 논어에서 말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 성기사(省其私), 다섯째 군자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 동이불화(同而不和), 여섯째 요왈(堯曰)편: 논어의 결론부이다.
주역에 담겨 있는 군(君)과 신(臣)의 역할을 살펴보자. 주역의 8괘는 붙은 막대기(양효), 갈라진 막대기(음효)의 세 번 중첩으로 만들어졌다. 건괘(☰), 진괘(☳), 감괘(☵), 간괘(☶), 곤괘(☷), 손괘(☴), 이괘(☲), 태괘(☱)가 그것이다. 양효는 임금 혹은 군자를 상징하며 그 속성은 강건함이다. 음효는 신하 혹은 소인을 상징하며 고분고분하다 또는 순종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진괘는 맨 밑에 양효 하나가 생겨난 것으로 리더의 명(明)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며, 감괘는 가운데의 양효가 위 아래의 음효로 둘러싼 모습으로 리더가 소인에 들러싸인 것을 경고한다. 리더가 명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얘기다. 간괘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소인들의 움직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누르는 모습인데 이것이 강이다.
손괘는 음효 하나가 자기를 맨 아래에 낮추고 있는 공손한 모습으로 신하의 본분을 나타낸다. 이괘는 신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임금에게 걸려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라는 것으로, 신하가 독자적으로 뭔가를 하려 해서는 안되며 제 역할을 할 것을 일러준다. 태괘는 신하가 맨 위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이니까 그냥 기뻐하며 보상을 바라지 말라는 뜻이다. 이른바 유종지미(有終之美)로, 신하가 굳셈을 드러내는 순간 임금과 동료에게 견제를 당한다는 의미다.
◆논어의 핵심 주제 ‘군군신신 부부자자’ = 주역의 군신 역할론을 알고 논어를 보면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관해 묻자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답했다. 공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었다.
공자가 강조한 것은 부부자자 쪽이 아니라 군군신신 쪽이었다. 부부자자 쪽은 사(私), 군군신신 쪽은 공(公)이다. 공자는 ”사적인 영역에서 바르지 못한 사람이 공적인 영역에서 바른 사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부부자자가 견실할 때 군군신신도 튼튼할 수 있다고 봤다.
공자는 자식이 자식다운 것을 효(孝)라고 했으며 자식이 효를 다하지 않으면 동물도 아니고 벌레라고 했다. 또 부모가 부모다운 것을 자(慈)라고 했다. 그리고 신하가 신하다운 것을 충(忠)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직(直)이다. 임금이 임금답다는 것은 관(寬) 즉 너그러움이다.
군군신신 관계에서 가장 좋은 것이 현현(賢賢)이다. 현군과 현신이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현은 어질다가 아니라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부자자에서 가장 좋은 관계는 혈친을 제 몸과 같이 여기는 친친(親親)이다. 이 ‘친친현현(親親賢賢)은 공자의 유가 사상에서 핵심 개념이다.
공자는 임금이 임금다움의 본질에 대해 논어 팔일(八佾)편에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행하는 사람이 삼가지 않고 상을 당한 사람이 슬퍼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 사람됨을 살필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관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품으로서의 관이며, 다른 하나는 논어에 나오는 대로 그룻에 맞게 부리는 것 즉 기지(器之)이다. 그럼 그릇에 맞게 부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됨을 살피고 적합한 자리에서 일을 하게 해줘야 한다. 장영실의 케이스는 바로 세종이 관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논어 학이편 첫 세 구절의 의미 =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그동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번역됐다. 이 구절을 올바르게 풀어내는 실마리는 ‘그것(之)’에 있다. 이 之 뒤에 목적어가 빠져 있다, 그냥 배우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 뭔가란 문(文)이다. 또 亦은 ‘또한’이 아니라 ‘진실로’ 또는 ‘정말로’이다. 문은 글월 문이 아니라 ‘애쓰다’, ‘애씀’, ‘애쓰는 법’으로 풀어야 한다.
정리하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옛 뛰어난 이들의 애씀이나 애쓰는 법을) 배워서 시간나는대로 그것을 익히니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문을 익혀야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논어는 조직의 최고 지도자 혹은 최고 지도가가 되려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즉 군군신신이 주제인 책이다. 그래서 그 주체는 군자 즉 군주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역시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가 아니다. 이 오역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는 ‘붕’이다. 붕은 사적인 친구가 아니라 공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다. 공자의 이 말도 군주나 지도자를 향해 하는 말이다. 정리하면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먼 곳으로부터 바야흐로 돌아왔으니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이다. 신하들 중에 뜻을 같이 하는 신하가 먼 곳에 즉 군주를 에워싼 주변의 사사로운 측근이 있는 세계에서 벗어난 곳에 가서 바르고 곧은 이야기를 듣고 막 돌아와서 군주에게 전하니 군주가 진실로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논어에서는 임금을 대하는 신하의 태도를 사신(師臣·스승 같은 신하), 우신(友臣·친구 같은 신하), 신신(臣臣·부하로서 직분을 다하는 신하) 등 3가지로 나눈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는 그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해석됐다. 여기서 오역은 ‘남들’과 ‘온’이다. 남들이 아니라 한 사람이며, 그 한 사람은 임금이다. 또 온은 사전에 성내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정확한 뜻은 ‘속으로 꽁하다’ 혹은 ‘서운해하다’이다. 이 구절은 자신이 세운 큰 공로를 임금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조차 서운함을 품지 않는 군자다운 신하를 얘기한다. 그래서 이 구절을 번역하면 “남아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조차 서운함을 품지 않으니 진실로 군자가 아니겠는가?”이다.
정리하면 첫 번째 문장은 명군(名君)의 문제, 세 번째 문장은 직신(直臣)의 문제,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명군과 직신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귐에 관한 글이다.
논어의 두 번째 구절은 공자의 제자인 유자(有子)의 글을 갖다 놨다. 그 글은 “그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순한데도 윗사람 범하기(범상)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난을 일으키기(작란)를 좋아하는 자는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무본), 근본이 서야 도리가 생겨난다(도생). 효도와 공순이라는 것은 아마도 어짊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이 구절은 ‘효도하고 공순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조심해야할 사람을 가려내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가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미리 골라내는 문제다. 어떤 사람이 마음 속에 윗사람을 범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내려면 평소 생활에서 부모에 대한 태도나 주변 윗사람을 대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말이 열쇠가 된다. 사적인 영역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주변 어른에게 공순하지 않은 사람이 공적 영역에 나왔다고 달라질 리가 없다.
군주 입장에서 가장 긴요한 사안은 ‘누가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자인가?’하는 문제다. 그걸 알고자 한다면 범상하는 마음을 품은 자를 먼저 가려내야 하고, 더 나아가 효도와 공순을 평소에 우러나서 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군주 자신이 효도와 공순에 힘을 쏟을 때라야 신하들의 효도와 공순이 얼마나 깊은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할지 도리가 생겨난다. 효제에서 범상을 걸러내고 나아가 작란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군주의 급선무이다. 결국 어짊을 행하는 도리는 효도와 공손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다. 어짊의 출발이 효도와 공순이다.
논어의 세 번째 구절은 공자가 말한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다. 번역하면 “아름다운 말과 고운 얼굴빛을 하는 사람 중에 드물구나! 어진 사람이여”다. 공자는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 빛을 가진 사람들 중에 어진 사람은 없다”거나 “그런 사람들은 어질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진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드물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 점을 놓친 기존 번역들은 “교언영색하는 자는 어질지 않다‘라고 풀이했다.
’교언‘은 말을 정교하게 잘 한다는 중립적인 뜻일 뿐, 말을 교묘하게 한다는 게 아니다. ’영색‘ 또한 아름답고 좋은 얼굴 빛이라는 뜻이다. 교언영색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A: 교언영색하면서 어진 사람 B: 교언영색하자만 어질지 않은 사람 C:교언영색하지 하지 않지만 어진 사람 D: 교언영색도 하지 않고 어질지도 않은 사람 등 네가지 유형이 그것이다.
공자의 말은 A와 B 사이에서 일어난 발언이다. C와 D는 애초부터 배제한 다음에 일단 교언과 영색하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그 사람의 어짊 여부를 판단하려 하면서 공자는 ’드물구나 어진 사람이여”라고 말했던 것이다.
앞서 문을 ‘애씀’이라고 했다. 애를 쓴다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교나 영이 바로 애쓰는 모습들이다. D는 말할 것도 없고 문제는 C다. 바탕은 좋은데 이를 키우려고 애쓰는 바가 없다. B는 타고난 바탕은 나쁘더라도 애써왔다는 점에서 C보다 나은 인물이다. A와 B 중에서 A를 찾는 일은 어렵다. 여기서 나온 말이 사이비 즉 겉은 비슷한데 실제로 속은 아닌 사람이다. 바로 B를 가리킨다. 사람을 알아보는 첫 단계는 A와 B 중에서 A를 찾아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 ‘성기사’ = 논어에서 핵심 중의 하나가 성기사(省其私)이다. 성기사는 사사로움을 살핀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단점이나 이상한 성향을 숨기고 있다. 만일 공적인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해야할 사람이라면 이걸 알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인지감(知人之鑑) 즉 사람을 알아보는 거울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 10장에서 ”그가 행하는 바를 보고(視) 그가 말미암은 바를 살피며(觀) 그가 편안해 하는 바를 들여다본다면(察)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성기사를 세 단계로 세분화한 것이다.
첫째, 어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남김없이 살펴보고, 둘째,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찾아내며, 셋째 그 사람의 행동이 우러나서 한 것인지 아니면 남을 의식해서 연출한 행동인지를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에서 관으로, 관에서 찰로 살펴보는 강도가 점점 세진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심화하면서 사람됨을 살피면 어떤 사람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이다. 공자는 이 구절에서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데 더 나아갈 경우 의심하는 것으로 여겨질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 보는 법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타인의 사람됨을 빈틈없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논어 자로 23편에서 ”군자는 화하되 동하지 않고, 소인은 동하되 화하지 않는다(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라고 했다. 공자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기쁘게 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器之).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기쁘게 하기를 비록 도리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다(求備)”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은 임금과 신하가 아니라 군자형 임금과 소인형 임금이다. 군자형 임금은 공도를 따르고, 소인형 임금은 사익을 따른다. 공자는 이 대목에서 ’기지‘와 ’구비‘가 반대말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기지가 신하를 그 그릇에 맞게 부리다면 구비란 그릇에 맞게 부리지 않고 아래 신하 한 사람한테 다 갖춰져 있기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 구비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논어 미자편에서 “참된 군주는 그 친적을 버리지 않으며, 대신으로 하여금 써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지 않게 하며, 선대왕의 옛 신하들이 큰 문제가 없는 한 버리지 않으며, (아랫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논어의 결론부에 해당하는 요왈(堯曰)편에서 공자는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가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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