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딥테크(혁신기술) 생태계가 기초연구에만 편중돼 기술 상용화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과학에선 세계적 역량을 갖췄지만 양자기술과 차세대 원자력 같은 분야로의 민간 창업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이 민간 영역으로 이전돼 제품화와 수익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중심의 생태계 전환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10일 글로벌 전략 컨설팅 기업 레달이 발간한 ‘한국 딥테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양자기술 분야 스타트업은 전체의 1%에 불과한 4곳으로 집계됐다. 차세대 원자력 분야에서는 민간 스타트업이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215개 스타트업이 몰린 바이오테크 분야와 대비된다. 이는 바이오테크,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양자기술 등 10대 핵심 분야에 속한 국내 432개 딥테크 스타트업을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는 “한국의 딥테크 산업은 내수 중심의 스타트업 문화와 제한적인 투자 회수(엑시트), 해외 자본 유입 부족 등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테라파워, 헬리온 에너지, 오클로 등 민간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한국의 딥테크 분야는 여전히 ‘정부 의존형’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가 딥테크 산업의 글로벌 확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분야별 외국인 투자 유치 비율에서도 격차가 뚜렷했다. AI·빅데이터 분야는 약 60%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반면, 로보틱스 분야는 24%에 그쳐 기술 분야별로 글로벌 자본 접근성에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보고서는 기술의 성숙도뿐 아니라 규제 환경과 투자자들의 엑시트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업공개(IPO)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지난 5년간 상장 직후 기업가치가 급락하거나 유상증자를 실시한 사례가 빈번했다”면서 “이는 상장 당시 과도한 밸류에이션과 불확실한 수익 기반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이 같은 실패 사례는 후속 투자 유치와 기술 상용화 의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을 넘어 민간이 주도하는 기술사업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한국 딥테크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글로벌 자본과 인재 유입이 가능한 개방형 정책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 주도의 기술사업화 체계 확립과 규제 혁신, 해외 M&A, 글로벌 IPO 등 다양한 엑시트 전략 확대가 필요도 지적했다.
퍼 스테우니스 레달 대표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인재를 보유해 딥테크 기반 글로벌 테스트베드로서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면서도 “정부와 스타트업, 투자자 간 신뢰와 협업을 바탕으로 민간 주도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