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은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아침 현관문 앞까지 배송되는 편리함 덕에 기저귀도 분유도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샀지만, 이번엔 5주 치를 계산해 채워 놓았다. 진짜 문제는 공사 기간이 이유식 시작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이유식 준비’를 검색하면 ‘제2의 혼수’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준비물 리스트’를 펼쳐놓고, 필요할 만한 것들을 미리 알아보고 주문하느라 며칠간 진땀을 뺐다. 쌀, 휴지 같은 생필품도 든든히 구비해 뒀지만, 불안한 마음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들였다.
마침내 공사 첫날,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손을 거두고 계단 앞에 섰다. 마지막 층계를 내디디며 생각했다. ‘할 만한데?’ 오랜 기간 걱정했던 것이 허무할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 이튿날, 회식을 마치고 17층을 걸어 올라오다 지옥을 맛봤다. 아기띠를 하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또 어떨까. 5주라는 시간이 무겁게 아득했다.
2주가 지났다. 그동안 이 생활도 적응이 돼 그로 인해 생겨난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다. 일주일에 며칠은 시간을 내 운동을 하자 다짐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와 약속들로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매일 최소 한 번은 17층을 오르내리니 강제로 운동 루틴이 생긴 셈이다. 날이 갈수록 수월해지는 것이 느껴졌고, 체중도 근소하게나마 줄었다.둘째로는 ‘저소비’ 생활이다. ‘문 앞 배달’이 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바뀐다. 매주 한 끼 이상은 먹던 배달 음식을 먹지 않게 됐고, ‘냉장고 파먹기’가 시작됐다. 냉동실에 버려져 있던 식재료들을 끄집어내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더불어 그동안은 주문도 편하고 반품도 무료이니 ‘있으면 좋은’ 정도만으로도 쉽게 구매를 결정했지만 달라졌다. 근래에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게 됐고, 그 결과 지출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셋째는 환경에 대한 뜻밖의 기여다. 분리수거함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번거로우니 쓰레기를 최대한 덜 만들려 노력한다. 아니, 애초부터 쓰레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배달 음식도 없고 택배도 없으니, 플라스틱 용기도 비닐과 종이 상자도 없다. 매주 주말이면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실어 나르던 것이 의아할 정도로, 이전 양의 반의반도 채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잃은 대신 더 건강해지고 돈도 아끼고 환경 보전에 기여하게 된 셈이다. 마냥 불평하고 불편하게 여겼던 일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말 그대로 체감하고 있다. 문득, 어쩌면 다른 것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겁먹었던 일이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별게 아니고,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이점을 가져다줄지도.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남편이 말했다. “그럼 공사 끝나도 계단으로 다닐까?” “….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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