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발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3〉

2 weeks ago 9

지난여름에는 인적 드문 산촌에 숨어 살았다. 무더위를 피한다는 핑계였지만 하나뿐인 누이가 세상을 떠나 힘들었던 탓이 컸다. 가여운 정을 재울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출입도 안 하니 몸이 어두워져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허기진 시간, 누가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중략)

요즘은 그 산골에 겨울이 와서
눈이 내리겠구나.
잘 갔지?
언 손으로 만드는 아침이
제발 주름지지 않기를.
아침이 하늘을 연다.
네가 밤새 씻어놓아서
환하게 잘 보이는구나.
겨울이 깊었는데도
모두 건강해 보인다.
잘 잤니?

-마종기(1939∼ )


얼마 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시집 서점’에서 열린 마종기 시인의 낭독회에 다녀왔다. 독자들 앞에서 “제 나이가 만 여든여섯 구 개월이 됩니다” 고백하며 시작한 낭독회는 아름다웠다. 그의 시는 좀 특별한데 낭독을 하면 그 특별함이 오롯해진다. 주기도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래된 기도문을 사제가 읊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낭독을 듣는 내내 성스럽고 맑은 기운이 노(老)시인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았다. 집에 돌아와 혼자 그의 시집을 뒤적뒤적 읽으니 눈물이 났다. 따뜻하게 슬픈 기분이 든다.

“잘 갔지?”, “잘 잤니?” 어느 능금나무 아래서 죽은 누이를 감지한 시인의 물음이다. 너무 다정해 가슴이 미어진다. 언어에 형태가 있다면 옆구리에 코 박고 울고 싶어지는 물음이다. 끝내 다정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시인일 것이다. 억울하고 슬픈 일, 애통한 일을 두루 겪고 나서도 세상의 작은 존재들에게 “가여운 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시의 전문은 길고 아름다우니 꼭 전문을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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