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눈높이에 맞춘 피아노가 부른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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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눈높이에 맞춘 피아노가 부른 감탄

올해 계획한 여섯 번의 ‘스쿨콘서트’를 모두 마쳤다. 주로 지역의 규모가 작은 초교를 찾아가는 하콘의 스쿨콘서트는 2013년께부터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온 특별한 공연이다. 스쿨콘서트를 할 때는 나름대로 세운 몇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학생들이 알 만한 곡만 연주하지 않을 것, 연주자와 학생 사이 거리를 최대한 좁힐 것, 프로그램은 인쇄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다양하다.

2014년 전북 김제의 한 초교.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전교생 60여 명이 모여 앉았다. 오른손 선율이 빠르게 흐르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제2번(D.899)이 끝나자 박수를 터트리는 꼬마 관객들에게 피아니스트가 물었다.

“빠른 곡이 좋아요, 느린 곡이 좋아요?” “빠른 거요!” “그럼, 이제 아저씨가 빠르고 느린 게 섞인 곡을 칠 건데, ‘라시미솔솔~’ 하는 멜로디가 많이 나올 거예요. 잘 들어보세요.”

이윽고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이 연주됐다. 피아니스트의 말처럼 ‘라시미솔솔’ 하고 멜로디가 시작되자 꼬마 관객들의 귀가 쫑긋 섰다.

이 공연을 함께한 ‘아저씨’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다. 초교 공연은 처음이라고 말한 그는 그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연주와 설명을 이어갔다. 이 공연을 위해 그가 구성한 프로그램은 바흐의 파르티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 슈베르트의 즉흥곡 제2번,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등 모두 호흡이 긴 곡이다. 공연 며칠 전 프로그램을 전달받고, 아무래도 초등생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아 곡목을 조금 바꾸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그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곡목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됐다. 김선욱이 한 이 말에 우리가 오히려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도 이런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어야지요.”

2025년 충북 제천에서의 스쿨콘서트를 마치고 며칠 뒤 학교 교사의 연락이 왔다. 전교생 51명의 이 학교에서는 관람한 공연에 대해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였던 모양이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인 관람 후기를 읽으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난 처음에 동요 같은 걸 쳐주실 줄 알았는데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손가락도 되게 빨랐다.” “감상만 해볼 때는 쉬운 곡인 줄 알았는데 손을 보니 정말 어려워 보였다.”

사실 이 학교 강당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제법 단 차가 있는 무대에 놓여 있어 이대로 진행한다면 피아니스트는 무대에, 학생들은 무대 아래 바닥에 떨어져 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즉시 스쿨콘서트의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피아노를 빌려 제천으로 향했다.

무대 아래에 놓인 새 피아노 근처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 앉았다. 손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며 옆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연주할 곡을 소개하는 피아니스트와 눈을 맞추고, 질문 시간에는 손을 번쩍 들어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무대 위 피아노를 사용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장면들이다.

비단잉어 ‘코이’는 작은 어항에서는 5~8㎝ 정도로 자라지만 강물에 방류하면 1m 이상 큰다고 한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지는 비단잉어처럼 사람 역시 경험한 세상만큼 자란다. 하우스콘서트가 찾아간 이 작은 공연이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첫 예술 경험이 되기를 그리고 그 경험이 씨앗이 돼 언젠가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성장의 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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