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인도서 무슬림 분리해 파키스탄 건국한 ‘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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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일 인도가 파키스탄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한 지 불과 보름 만입니다. 양국은 이후 국경 지역에서 소규모 교전을 이어가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급기야 파키스탄이 ‘핵 보복’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는 극도의 우려 속에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본래 함께 살아가던 민족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위태로운 적대 관계는 76년 전, ‘분리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중심에 파키스탄 건국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1876∼1948·사진)가 있습니다.

인도 카라치에서 태어난 진나는 16세에 혼자 영국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귀국한 그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협력해 인도 독립을 이루겠다는 이상을 품고 인도국민회의에 참여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함께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정치권력이 점차 힌두교 중심으로 재편되고, 무슬림 공동체의 정치적 목소리가 배제되자 점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결국 그는 ‘하나의 인도’ 안에서는 무슬림들이 독립적 정체성과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1940년 라호르 회의에서 “무슬림은 하나의 민족이며, 인도의 다른 공동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하며 별도의 국가 수립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훗날 파키스탄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진나의 집요한 외교와 정치 협상 끝에 1947년 영국은 인도를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으로 나누는 ‘분할 독립안’을 수용합니다. 이후 파키스탄 초대 총독이 된 그는 악화된 건강 속에서도 신생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헌신했고, 독립 이듬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산은 지금도 논쟁적입니다. 파키스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지만, 인도에서는 종교에 기반한 분단과 유혈 충돌의 책임자로 비판받습니다. 분할 이후 수백만 명이 종교를 이유로 국경을 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피의 기억은 오늘날 카슈미르 분쟁과 핵무장 대치로 이어지며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존재 자체로 서로를 위협하는’ 국가로 인식하며 긴장 상태를 이어가는 지금, 진나는 그 분열의 기원에서 여전히 역사적·정치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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