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이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 교황이 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69·사진)은 전통과 개혁을 잇는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면서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레오 14세는 1952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이민자 계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성장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했으며 1980년대 중반 자원해 남미 페루 치클라요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사목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공동체와 빈민층을 위한 교육과 복지 사업에 앞장섰습니다. 2023년에는 교황청 수도회성 장관에 임명되면서 교회 내 수도 생활의 개혁과 신앙 공동체 회복을 이끌었습니다.
레오 14세의 등장은 여러모로 이례적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라틴계 국가에 뿌리를 두었던 교황직에 비(非)유럽계 지도자가 오른 일은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두 번째이자, 북미 출신으로서는 첫 번째 사례입니다. 더욱이 그는 수도자 출신으로서 화려한 교황청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그의 선출은 교회가 더 이상 제도 중심의 권위가 아니라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내적 쇄신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특히 교황 이름으로 ‘레오’를 선택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19세기 말 노동 문제와 사회 정의를 강조했던 레오 13세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를 둘러싼 기대만큼이나 과제도 막중합니다. 21세기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가톨릭교회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이탈,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 논의, 생태 위기 대응, 신앙 세속화 문제 등 교회를 둘러싼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열어놓은 ‘대화하는 교회’의 문턱 앞에서 이제 레오 14세의 시대가 막 시작된 것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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