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국내외 학자들의 흥미로운 발표가 많았지만,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중국과 일본의 저명 학자들이 발표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관한 새로운 연구였다. 이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추진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오히려 지역 간 자원 배분에 왜곡을 초래해 경기 침체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석은 한국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지역 균형발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구와 자원이 서울 등 수도권에만 몰려 집값이 치솟고 삶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
한편 지방은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며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역 균형발전이 당위성을 지닌 목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균형발전을 이룰 것인가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지역 개발을 명분으로 다양한 재정 사업을 추진했지만 수도권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잘 알려졌듯이 일본은 1990년대 들어 엔화 강세에 따른 국제 경쟁력 약화, 기업 부실화, 자산가격 거품 붕괴를 겪으며 장기 침체에 빠졌다. 이에 대응해 일본 정부는 재정지출을 대규모로 확대했다. 정부 지출은 크게 소비와 투자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늘려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은 정부 소비, 도로·철도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정부 투자에 해당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경기 침체기에 낙후 지역에 대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지역 발전을 촉진하는 일석이조일 수 있다. 일본 관료들도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전략을 설계했다.
문제는 자금 조달 방식이었다. 재정지출 확대가 세금 인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부채는 늘어난다. 당시 일본 정부도 높은 부채와 상환 부담을 우려했으나, 마침 일본중앙은행이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하면서 부채 상환 비용이 크게 줄었다. 이는 일본 정부에 일종의 ‘행운’(windfall gains)이었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가 시작됐다. 재정 부담이 줄어든 중앙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은 지방정부의 요구를 선심성 대책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더 높은 수익을 낼 사업을 엄격히 선별하지 않고, 형평성 명분 아래 낙후 지역 정치인들의 로비를 반영한 투자를 늘린 것이다. 재정 여력이 없었다면 신중했을 결정을 느슨하게 한 셈이다. 이는 행운이 오히려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로 변질한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의 이 뼈아픈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과거 신흥국이었을 때와 달리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므로, 재정 기조 역시 다소 완화된 기준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7%에 이른 정부부채는 신흥국 기준에서는 위험할 수 있지만, 선진국 기준으로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부양 필요가 있을 때 건전성만을 목표로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늘어난 빚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형평성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형평성만 추구하는 균형발전 전략이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적 정책과 결합할 경우,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 균형발전은 목표다. 그러나 목표의 정당성이 수단의 느슨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형평을 위해서일수록, 투자 선정은 더 냉정해야 한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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