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교 사각지대, 영사 행정 70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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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외교 사각지대, 영사 행정 70년의 민낯

해외 나가기가 무섭다. 국제적 범죄에 청년이 희생되자 이제야 난리 법석이다. 선진국은 언제 어디서든, 특히 외국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 진심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언론이 집중 조명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기까지 누가 국민을 보호했는가.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범죄영화 같은 사고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외교 행정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해외에서 사고를 당한 국민을 보호하고 법적·의료적 지원을 조율하며, 가족과 정부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외교부의 영사(領事) 업무다. 그러나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시스템은 놀랄 만큼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외교부의 영사 기능은 주로 문제 발생 후 처리에 치중돼 있고, 예방·조기 대응 체계는 매우 취약하다. 재외공관은 대부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영사 한 명이 3~4개국을 겸임하는 사례도 있다. 인사순환제 때문에 2~3년마다 교체돼 전문성과 지역 네트워크가 축적되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해외여행객은 연간 3000만 명, 재외 동포는 700만 명을 넘어섰다. 영사 업무는 더 이상 일부 외국 거주민의 민원 창구가 아니라, 국민 보호 시스템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영사 조직은 여전히 행정적 절차와 보고 체계에 묶여 사고 대응 속도는 느리고, 관련 부처나 현지 기관과의 협력망도 미비하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이미 영사 행정을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일본 외무성은 전 세계 재외공관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연동해 실시간 위험 감시와 위치 파악, 위기 경보 자동 발령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은 ‘스마트 트래블러’ 등록제를 통해 해외 체류 국민을 데이터로 관리하며 사건 발생 시 자동 위치 추적 및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재외공관 홈페이지 게시, 전화 연결, 보고 체계 중심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주재국 경찰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에 먼저 알려지는 일이 다반사다. 즉 ‘국민 보호’보다 ‘사건 관리’에 머무는 관료적 관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제는 미래형 영사 행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디지털 기반 영사 네트워크 재구축이 시급하다. 외교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을 하나의 ‘국민보호 데이터 허브’로 통합하고, 여권·출입국·위치 정보가 실시간 연동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문 영사 인력 양성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외교부의 영사는 대부분 일반 외교관 순환 인사로 채워져 있다. 외교적 협상과 인명 구조, 현지 법률 이해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전문 영사관’ 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재외국민 보호 기금과 긴급 지원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재난, 범죄, 질병 등 긴급 상황에서 현지 병원비나 수색 비용을 민간 기부와 임시예산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외교는 국익을 위한 ‘정치의 언어’이고, 영사는 국민을 위한 ‘책임의 언어’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해외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나라 대사관의 신속 대응은 국가 신뢰도와 국격의 바로미터가 된다.

‘한 사람 보호’의 철학으로 국민이 해외 어디서든 “우리나라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외교력이다. 필자는 공직 재직 당시 재외국민 보호 체계 구축을 위해 ‘해외동포청’ 신설이라는 영사 업무의 진화를 제안한 바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민생범죄의 희생자는 평범한 이웃이다. 공권력을 움직이는 권력은 누굴 위해 봉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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