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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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단상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간 워터파크에서였다. 풀장에서도 방수팩에 휴대폰을 넣어 수시로 울리는 이메일에 회신하던 중, 실망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휴대폰을 로커에 넣어 놓고 남은 휴가를 온전히 아이들과 보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에 하는 부처별 업무보고가 한창이다. 고용노동부도 최근 실근로시간 단축의 일환으로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 즉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입법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근무시간 외에는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해 이메일, 전화, SNS 메시지 등 어떤 방식으로도 사용자에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이와 관련한 입법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직장인 74%는 퇴근 후에도 업무 지시와 자료 요청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2023년 고용부의 실태조사나 업무시간 외 SNS를 통한 업무상 지시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쟁송화했다는 기사들을 보면 최근 들어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해져 특히 사무직이라면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언제든 업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근로자가 장소적 구속에서 벗어나 유연한 근무를 가능하게 해준 반면, 퇴근하더라도 업무를 떼어놓지 못하고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휴대폰 분리불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근로시간 외에는 근로자를 업무에서 해방해 재충전을 보장하고자 한다는 법률안의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이 반드시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법률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프랑스와 호주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입법화하기는 했지만 연락 자체를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연결 차단을 단체협약에 둘 것을 의무화하거나 업무 시간 외 연락을 거절한 근로자에게 사용자가 불이익을 주면 제재하는 방식이다.

퇴근 후 카톡 금지가 입법 형식으로 이뤄진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근무시간 후 회식 장소 공지도, 시차로 인해 야간에 전송한 해외에서 온 이메일도, 야근하는 동료가 보내온 질문 하나도 법률 위반이라는 진정이 쇄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기에 앞서 가장 당연하고 단순한 것부터 실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준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또한 근로자가 근무시간 외에 업무상 연락을 받고 구체적인 대응을 해야 했다면 이는 연장근로수당 지급 대상이 돼야 한다. 사용자가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데도 근로자의 휴식권을 침해할 정도로 업무시간 외에 연락을 계속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피해자 보호와 행위자 제재를 고려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근무시간 중 성실한 근로 제공이 요구되는 것처럼 근로시간 외에는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구성원들 간에 형성돼야 할 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게오르크 엘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새로운 법률을 만들기에 앞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관한 구성원들 간 올바른 인식 개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업장별 자정 능력에 의한 해결 시도가 선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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