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최대치이자 만년 2등 숫자 확인시켜
계엄 찬성 8%와 중도 확장 중 택해야 해
정치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사라진 선거
헛돼선 안 될 6개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세계사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군경을 동원했다가 대중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혀 실각과 망명의 경로를 걸었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권이 그러했으며, 4·19혁명을 불러온 이승만 정권 또한 그러한 경로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실 지난 6개월여 동안 겪은 경천동지의 정치적 경험에 비해, 선거에서 각자가 받아 든 성적표는 이례적으로 ‘무난’했다고 다 같이 느꼈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실각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대선에서 41.15%의 지지를 얻었으며,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비상계엄에는 반대하나 이재명 대통령은 과반에 모자라는 49.42%의 지지를 받았다. 예전에 많이 봤던 동서 분할의 지도와 함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선거 결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 41.15%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서건 이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해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근 진행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조사에 의하면 김 후보 지지자들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계엄을 지지하지 않으며, 특히 이들의 65%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고 싶어서” 김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일단 한국의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김 후보에게 41.15%의 지지를 보낸 것을 다음의 몇 가지로 그 의미를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적어도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이 필리핀, 볼리비아, 우크라이나에서처럼, 혹은 제1공화국의 자유당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둘째,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구성될 이재명 정권에 대한 견제 역할을 싫건 좋건 국민의힘에 맡겼다. 이것은 위에서 본 것처럼 김 후보의 주요 선거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셋째, 보다 중요하게, 41.15%는 현재의 대통령제에서나 소선거구를 택하고 있는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서 확실한 만년 2등을 보장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특히, 그 숫자는 현재 한국의 보수정당이 끌어모을 수 있는 최대 연합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대한민국은 계엄과 관련된 압도적 마음의 다수가 구성돼 있고, 지난해 12월에 비해 그 크기가 조금도 수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의 80%가 여전히 계엄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보여줬던 반면에 응답자의 8%만이 계엄이 “국가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였다고 답했고 13%가 “야당의 과도한 공세에 대처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답했다. 동일 조사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지지자의 88%가 계엄에 반대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보수 단일화’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41.15%라는 숫자는 그래서 한국 보수에게 던져진 심각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적극적으로 계엄에 찬성하는 8%의 지지자들을 보수정당의 틀 안에서 적절하게 안고 가면서 중도 유권자들을 소외시키고 갈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두고서 새로운 중도 확장을 생각하게 해줄 ‘혁신’적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를 고민할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번 선거가 너무나 예외적인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제 아무도 정치의 희망을 이야기하지도, 무엇인가가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게 됐다는 점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어느 빵공장에서 노동자가 연이어 죽어나가는 일이 있어도 그런 문제들을 정치가 해결하고 풀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긁어 올리면서 각자의 채널에서 각자의 분노를 삭이는 중이다.그러나 지난 6개월이 그저 한겨울밤의 꿈이 아니었다면, 우리 정치공동체가 뼈아프게 겪었던 경험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남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은 비록 유한하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유장하게 지속될 한국 정치사에서도 손꼽힐 그 혼돈과 고통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였고 우리는 한 뼘이라도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야, 좌우, 진보·보수 공히, 정치 지도자들과 유권자들 공히, 국민의 삶을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시간이 아깝게 흘러만 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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