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석 칼럼] 노벨委도 인정한 양자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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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석 칼럼] 노벨委도 인정한 양자컴 시대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양자컴퓨터 등 양자역학 원리를 활용한 차세대 기술 개발에 공헌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양자역학은 원자보다 작은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다.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중첩’,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것처럼 움직이는 ‘얽힘’ 등이 핵심 개념이다.

노벨과학상은 해당 기술이 상용화하고, 수십 년이 흐른 시점에 수여되는 게 일반적이다. 새로운 발견이 인류의 행보를 바꾼 ‘거인의 첫 한걸음’임을 입증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시상은 이례적이다. 아직 상용화 전 단계인 양자 기술 연구진이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양자 기술이 실험실 단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아직 20년은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양자컴 기술이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의견을 수정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슈퍼컴퓨터를 결합하면 잦은 계산 오류 등 양자컴퓨터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미셸 드보레 구글 수석과학자는 자사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슈퍼컴퓨터가 100자(𥞑:10의 24제곱)년 걸려야 풀 문제를 5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는 인간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고대에는 불과 바퀴, 근현대엔 증기기관과 자동차 등이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갈랐다. 과학기술 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21세기 들어선 패러다임 변화가 부쩍 잦아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20년 만에 AI라는 새로운 물결이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다음 순서는 양자컴퓨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양자컴퓨터는 선도국의 승자 독식을 공고히 하는 기술이다. 압도적인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신약에 들어갈 물질을 척척 찾아내고, 제조 공정과 공급망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등 산업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인터넷 혁명 때 시대의 흐름에 빨리 올라탔다.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빅테크를 키워내며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AI 전쟁엔 참전이 늦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일부 AI 기기용 하드웨어 부품을 제외하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할 만한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정부가 뒤늦게 1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며 AI산업 부흥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 및 중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세상을 바꾼다. 존 매카시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가 AI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1956년이다. 하지만 상용화와 산업화가 이뤄진 건 최근의 일이다. 학습을 위한 데이터와 알고리즘, 컴퓨팅 인프라라는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 챗GPT가 등장한 2022년을 AI 원년으로 볼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미래도 예측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1~2년 만에 막강한 상용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지만, 기술적 난제에 가로막혀 10년 이상을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본격적인 상용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해 투자를 게을리했다가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다. 왕도는 따로 없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양자 등 미래 기술 패러다임을 바꿀 후보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는 게 최선이다. 지금은 한국이 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느냐를 질타할 때가 아니다. 미래 기술의 씨앗을 모으고 키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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