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8억 명이 무의미하게 버리는 혈액이 있습니다. 바로 생리혈입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매달 생리에 시달리지만, 정작 생리혈은 그저 버려야 하는 혈액으로 치부됐습니다. 앞으로는 이 혈액이 여성 건강 진단의 핵심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감염 질환부터 암까지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 생리대’가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 연구팀이 만든 스타트업 멘스트루AI는 지난 5월 난소암과 자궁내막증을 검출할 수 있는 ‘스마트 생리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생리혈은 단백질 함량 측면에서 혈액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일반 혈액 분석을 위해서는 전처리 단계가 필요하지만, 생리혈은 응고 인자와 헤모글로빈 농도가 낮아 전처리가 필요하지 않다며 여성 건강을 비침습적으로 모니터링할 최적의 대안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멘스트루AI는 스마트 생리대를 통해 몸속 염증 상태를 나타내는 ‘C-반응성 단백질’(CRP), 암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알 수 있는 ‘암배아 항원’(CEA), 난소암 선별에 많이 사용되는 ‘CA-125’의 농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염증 수치가 높다면 감기나 기타 감염 질환을 의심할 수 있고, CEA와 CA-125의 수치로 난소암 등의 중대 질환도 잡아낼 수 있는 겁니다.
스마트 생리대의 외관은 일반 제품과 다르지 않지만, 내부에는 종이 센서가 들어가 있습니다. 센서에 세 단백질이 닿으면 선이나 동그라미 형태로 무늬가 생깁니다. 15분 만에 육안으로 검진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자가진단 키트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밀한 검사 결과 확인도 가능합니다. 앱은 센서의 미세한 색깔 차이로 각 생체지표(바이오마커)의 수치를 정량화하고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설명해 줍니다. 또한 연구에 참여한 피실험자들은 착용감이 일반 생리대와 동일하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비용’에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너무 비싸면 사용이 어렵기 때문이죠. 업체는 “센서의 생산 비용은 개당 1달러 수준”이라며 “장벽 없는 건강 모니터링 방법으로 여성 건강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여성들의 건강 진단에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아직은 여성 10명을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로,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멘스트루AI는 100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임상시험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에 게재됐습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