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 金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자칫하다가 북핵 폐기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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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0.01 17:25 수정2025.10.01 17:25 지면A3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백악관이 어제 밝혔다.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도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느냐”는 국내 언론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긴 하나 지난달 21일 김정은이 ‘비핵화 목표 포기’를 사실상의 대화 전제조건으로 내건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백악관 관계자는 또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비핵화 전제 협상보다는 만남과 대화 재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는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해주는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견지한다곤 하지만 비핵화 목표에 대한 사전 합의 없이 만남부터 이뤄질 경우 대화는 김정은의 지정학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미국의 기류 변화에 맞서야 할 우리 정부의 원칙이 다소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확고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일관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주 유엔총회 연설에서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겠다”고 했다. 세 요소 간 우선순위가 있는 건 아니라지만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통해 비핵화로 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두 국가론’을 제시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라며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이대로 미·북 대화가 재개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코리아 패싱’이다. 한·미 무역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주한 미군 역할 조정, 전작권 전환 등 안보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미·북 관계에서마저 소외된다면 우리의 안보적 이해는 공중에 뜰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에서 한 치도 물러서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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