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외려 주가 부양을 저해하고 여러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재차 지적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두 차례 상법 개정 폭주에 이어 ‘더 더 센’ 세 번째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자 연구보고서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 것인데, 합리적 지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상의의 분석처럼 자사주 의무소각은 기업 가치 훼손을 불러 주주환원 증대라는 정책 목표에 역행할 가능성이 크다. 소각을 의무화하면 감자 목적 외에는 자사주를 취득할 유인이 사라진다. 임직원 보상, 배당 재원, 자금 조달 등 다양한 목적의 자사주 취득 유인이 사라져 자사주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자사주 취득이 저평가 신호로 해석돼 주가를 밀어 올리는 증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해외에서도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화한 국가는 드물다. 영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뉴욕·델라웨어 등 많은 주에서 자사주 보유·활용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독일은 ‘3년 내 처분’ 조항을 두고 있지만, 자본금의 10%를 초과하는 자기주식에 한정한다. 소각으로 자본금이 줄면 부채비율 상승 등으로 신용등급과 자금 조달에 불리해지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다.
석유화학산업처럼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는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보유·처분을 비상장사로까지 허용한 2011년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자사주를 활용해 온 기업들의 경영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합병 등의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까지 소각하면 자본 감소로 고유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같은 대등한 경영권 방어 조치 없는 소각 의무화는 투기 자본의 활동 공간만 키울 뿐이다. SK, KT&G,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자사주를 활용해 투기적 해외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힘겹게 방어해냈다. 자사주를 통한 대주주의 사익 추구에 대응할 목적이라면 굳이 소각을 의무화할 필요가 없다. 악용을 방지할 이사회 책임 강화, 처분 시 주주 보호장치 등의 핀셋 조치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