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터리 리스크' 극복에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성패 달렸다

1 month ago 13

지난 26일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행정 시스템 647개가 한꺼번에 먹통이 됐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 무정전 전원장치(UPS)를 지하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배터리에서 불꽃이 튀며 화재가 발생했다. 어제까지 모바일 신분증, 정부24 등 일부 서비스가 복구됐지만, 완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내부 전산망이 회복되지 않아 공무원들이 업무에 필요한 결재 서류를 수기로 작성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예측 가능한 일이 벌어졌고, 대비책은 없었다”며 국민 앞에 사과했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를 부른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등 비슷한 사건이 계속 터지고 있는데도 대비가 부족했다는 자기반성이다. 이번 화재에는 석연찮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배터리와 서버의 간격이 60㎝에 불과했고 차단벽도 없었다. 최소 90㎝ 이상 거리를 두도록 한 국제기구 규정에도 어긋난다. 배터리의 내구연한(10년)을 1년가량 지난 제품을 썼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6월 정기검사에서 배터리 교체를 권고했다. 전원을 완전히 차단한 뒤 작업해야 한다는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UPS는 가정용 전자제품과 달리 직류 전원을 사용하는데,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전선을 분리하면 전압이 급격하게 상승해 불이 날 수 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안전 불감증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현대 문명의 필수품이다.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자동차 같은 소비재는 물론 UPS,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시설에도 빠지지 않고 배터리가 들어간다. 이 제품의 단점은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배터리 화재만 2439건에 달한다. 7명이 사망했고, 1343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주변 온도가 100도를 넘거나, 손상이 있을 경우 배터리 내부에서 ‘열폭주’가 발생해 연쇄적인 폭발과 화재를 야기한다. 이때의 배터리 온도는 1000도 안팎까지 치솟는다. 물을 활용해 불을 끄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배터리 화재 예방 매뉴얼은 이미 2022년 SK C&C 데이터센터 사고 때 마련됐다. 당시 정부는 민간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 배터리와 서버 사이에 격벽을 설치하고, 거리도 충분히 띄울 것을 주문했다. 배터리실에 전력선 포설을 금지하고, 소화약제가 설치된 배터리 도입을 권고했다. 최근 지어진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정부의 안전 지침을 따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해도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데이터센터를 이중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문제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등 노후 데이터센터들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안전 리모델링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설마 사고가 나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에 안전 투자가 뒷순위로 밀리는 것이다.

화재 여파로 리튬이온 배터리 공포증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전국 발전소에 ESS를 설치하는 국책사업이 뒤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사용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스마트폰 없이 살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더구나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인프라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시설이다. 향후 펼쳐질 모빌리티 세상은 자율주행차와 UAM(도심공항교통), AI 휴머노이드 로봇 같은 첨단 기기들이 중심이다. 이 기기들은 데이터센터와 끊임없이 교신하면서 작동하게 돼 있다. 이런 시대에 혹여 데이터센터가 무력해지는 일이 생긴다면 달리는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서고 로봇들이 사방에서 뒤엉키는 대재앙을 피할 수 없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확실한 대체재가 나오기까지는 안전에 유의하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고를 줄이는 길은 안전 매뉴얼을 새롭게 정비하고 철저히 지키는 것뿐이다. 특히 안전에 취약한 노후 데이터센터의 리모델링을 서둘러야 한다. 관련 업계도 할 일이 많다.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과도기 기술이다. 전고체 배터리 등 화재 위험이 적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시험 단계인 소화약제가 내장된 배터리를 보급하는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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