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인가, 붉은 ‘신기루’인가” (펄어비스 게임 유저)
펄어비스의 차세대 액션 어드벤처 ‘붉은사막’ 출시가 또 미뤄졌다. 2021년 공개 후 1차 연기에 이어 이번에 다시 내년으로 밀리면서 당초 계획보다 4년 넘게 늦어지는 셈이다. ‘트리플에이(AAA)급 대작’으로 글로벌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펄어비스는 최근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투자자 신뢰와 게이머들의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한때 국내 게임 산업의 미래로 불렸지만 잇단 연기와 콘텐츠 공백 속에 ‘계륵’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붉은 사막, 출시 내년으로 연기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는 13일 열린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붉은 사막 출시는 기존 공개한 일정보다 1분기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며 “약속했던 올 4분기 출시 일정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AAA급 PC·콘솔 게임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오프라인 유통·인증, 파트너사와의 협업 등에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허 대표는 “완성도를 위해 막바지 개발과 품질 검증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게임을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출시 지연이 장기 흥행 가능성을 오히려 갉아먹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붉은 사막’은 펄어비스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출시 일정은 당초 2022년에서 여러 차례 미뤄졌고, 이번에 또다시 2026년으로 연기됐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AAA 급 대형 게임의 3년 이상 연속 연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반감되고, 초기 마케팅 효과도 휘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AA급 게임은 단순한 기술력 이상의 ‘문화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장르다. 제작비만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만큼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선도하는 기획과 트렌드 감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발 지연이 반복되면 트렌드 주도권을 잃을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출시가 늦어질수록 완성도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지만, 시장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재무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로드맵 제시 필요”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펄어비스 주가는 요동치고 있다. 이날 펄어비스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매출은 79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전 분기 대비 4.9%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118억 원, 당기순손실은 227억 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 해외 매출 비중은 82%를 차지했지만, 효자 타이틀인 ‘검은사막’도 서비스 9년 차에 접어들며 성장세가 둔화했다. 신규 콘텐츠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이용자 수는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했다.
‘검은사막’ 외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지식재산권(IP)이 없다는 점에서 위기감은 확산하고 있다. 차기작 ‘도깨비’ 역시 구체적인 출시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외 대형 게임사들이 다수의 IP를 분산 출시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과 달리 펄어비스는 단일 프로젝트 의존도가 높아 충격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펄어비스는 하반기 ‘게임스컴’, ‘팍스 웨스트’, ‘도쿄게임쇼’ 등 주요 글로벌 게임쇼에서 ‘붉은 사막’ 마케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지금 필요한 건 홍보가 아니라 개발 일정 준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흥행 여부는 출시 시점의 시장 경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며 “2026년 초에는 대형 콘솔·PC 신작이 대거 몰릴 수 있어 지금보다 완성도와 차별화 포인트 확보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