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쓸모[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56〉

6 hours ago 3

“늙고 병들었다고 버림받으면 너무 잔인하잖아.”

―민규동 ‘파과’


“처음으로 쓸모 있다는 소리 듣고 가족이 되었지.” 조각(이혜영)으로 불리는 60대 킬러는 자신이 이 길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쓸모’라는 설명을 붙인다. 한겨울에 버려져 눈 오는 거리에 쓰러져 있던 열여섯의 조각을 류(김무열)가 구하면서 그녀는 그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류에게는 ‘방역’이라 부르는 숨겨진 일이 있었다. 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치하는 일이다. 류 밑에서 조각은 킬러로 자라고, 류가 죽자 신성방역이라는 회사를 차려 킬러들의 전설이 된다. 하지만 ‘신성한 일’이라 운운하며 돈 안 되는 일에도 손을 대려는 나이든 조각을 조직은 퇴물 취급한다.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를 들여 조각을 밀어내려 한다.

“늙고 병들었다고 버림받으면 너무 잔인하잖아.” 투우와 사투를 벌이며 조각이 하는 말처럼 이 작품은 60대 킬러와 젊은 킬러가 애증의 대결을 벌이는 액션 영화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쓸모’다. 파과가 ‘흠집 난 과일’을 뜻하듯, 이 영화 밑바탕에는 상처가 나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들이 버려지는 현실이 깔려 있다. 병들어 버려진 유기견처럼 조각은 이제 나이 들어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상처 난 복숭아를 덤으로 주며 “이게 더 맛있다”는 과일가게 아주머니의 말처럼 이들은 결코 버려질 존재가 아니다. 진짜 쓸모없는 건 오히려 조각이 방역하는 ‘썩은 인간’들이다.

이 작품에는 그래서 액션 너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아이, 여성, 노인의 삶을 관통하는 조각이라는 인물에 투영돼 있다. 이들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며 진짜 버려져야 할 존재는 따로 있다고, 조각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보여준다. 쓸모에 따라 사용되거나 버려지는 현 세태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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