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우리가 바라던 증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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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우리가 바라던 증시가 아니다

코스피지수가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미국의 관세유예 조치(4월 9일) 발표 직후 대세 상승을 시작해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이다. 최근 6개월 상승률은 56%로 대만(57%)과 세계 1위를 다툰다.

만성적인 저평가 탈출이 반갑지만 더 좋은 증시를 위해 짚어볼 대목도 많다. 증시 존재 이유는 저비용의 안정적 자금 조달과 사회 전체의 효율적 자원배분 지원이다. 이 과정이 순조로우면 투자자의 지갑도 자연히 두툼해진다.

증시가 괄목상대 중이지만 기대와는 아직 괴리가 크다. 제도와 투자문화 공히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보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차익’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기업의 혁신적 시도와 비전이 ‘주가 떨어진다’는 상투적 반대에 밀려 고전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인도법인을 어제 현지 증시에 상장시킨 LG전자도 그런 사례다. 2조원의 해외 자금 조달에 성공하며 한국 제조업의 현지화 모범 사례를 추가했지만 ‘알짜회사를 왜 떼내느냐’며 상장 중단 요구가 빗발쳤다. 기업의 동태적 성장 경로 구축에는 무관심한 채 ‘주주환원만이 정도경영’이라고 우기는 양상이다.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입성 때 똑같은 곤욕을 치렀다.

자회사 동시 상장은 ‘더블 카운팅’ 조장 행위라는 비판도 증시가 뒤집어질 듯 거세다. 자회사 이익이 모회사에 중복 반영되면 주가 할인이 유발된다는 게 더블카운팅 논지지만 흔쾌히 동의하기 힘들다. 회계장부상에 표기된 숫자가 수익성, 재무안정성 등 기업의 고유 가치를 바꿀 수는 없다. 사업지주회사는 주가 할인이 미미하다. 일본에선 자회사의 경영권 가치를 인정받아 프리미엄부로 거래되는 지주사가 많다.

소액주주 보호를 둘러싼 방향 착오도 한국 증시의 중병이다. 보호 대상은 현시점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 존속기간 중 주식을 보유하게 될 잠재적 주주집단 전체여야 한다. 특정 시점 주주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장기 성장이 멈춘다면 미래 소액주주들의 이익 기회는 원천 봉쇄되고 말 것이다. 이런 균형 잡힌 생각을 결여한 지난 두 차례의 상법개정은 증시와 경제 전반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더더센 상법’도 마찬가지다. 소각으로 인한 주식가치(EPS) 상승을 소각 시점 주주가 독식하게 되고 이는 투자자 이익 극대화에 역행한다.

주가 상승을 경제 성장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위험수위다. 주가는 실적보다 유동성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독일 주가도 2년 새 저점대비 103% 급등했다. 경기 회복을 위한 돈 풀기의 결과다. IMF행이 언급되는 프랑스, 브렉시트 이후 고전 중인 영국, ‘잃어버린 30년’ 일본 증시의 최고가 행진도 같은 맥락이다.

‘화폐 대탈출 랠리’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만큼 거시환경이 급변 중이다. 주식뿐만 아니라 금, 코인, 부동산 등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에브리싱 랠리’다. 그런 가운데 원화 약세가 두드러진다. 코스피지수가 더 많이 오른 것은 원화가 더 많이 녹아내린 결과라는 가설까지 등장했다.

증시 상승의 함의와 이면이 이처럼 복잡한데도 여권은 상법개정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외국인 매수가 4월부터 본격화하며 새 정부 출범과 겹친 결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상승 주도업종도 반도체, 조선, 방산, 원전 등 상법개정과 연계하기 어렵다. 강세장이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대만 등이 줄줄이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주가가 올랐으니 경제가 좋아질 것이란 낙관 무드가 가장 걱정스럽다. 돈 풀기 아베노믹스(2012~2020년)로 일본 증시는 13년간 다섯 배 뛰었지만 일본 경제는 한국·대만에 추월당할 판이다.

증시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주식회사 제도를 지탱하는 인프라다. 취약한 증시로는 건강한 경제를 달성할 수 없다. 유상증자에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을 피해 간접금융으로 대체하다 보면 자본조달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수합병 사업재편 같은 사생결단은 언감생심이다. 불길한 신호가 이미 여러 경로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상장폐지 기업이 63개에 달했다. 매년 기업이 증시로 환원하는 자금이 증시에서 조달하는 자금의 두 배를 웃돈다는 분석까지 나와 있다. 주객전도의 증시 문화로는 혁신과 성장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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