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 금융가를 흔들었다. 저소득층에 고금리, 고소득층에 저금리를 물리는 “지금의 금융구조는 역설적”이라고 했다. 말인즉슨 빚 갚을 능력이 부족한 서민일수록 저금리로 대출해 상환율을 높이는 게 은행 경영 관점에서도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진지한 반박이 필요할까 싶을 만큼 비상식적인 견해다. 그런 대출 구조라면 누구나 상환을 기피하며 신용 강등에 매진하지 않겠나. 현대 신용사회 붕괴에 다름 아니다.
그의 돌출 발언은 대통령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보름 전 이재명 대통령은 ‘15%대 고금리 대출 확대를 서민 대책이라고 보고하느냐’며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질책했다. 그러면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하지만 금융학 개론을 전복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경제논리에 따라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는 게 맞긴 하다”고 분명하게 전제한 뒤 내린 지시였다.
대통령은 ‘복지적 대출’이라고 작명한 해법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서민에게 저리 대출한 뒤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실은 재정으로 메우는 방식이다. 경기지사 시절 연 1% 초저금리의 ‘극저신용 대출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과 실행력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금리 늪에서 허우적대는 서민의 팍팍한 삶에 경제원론만을 들이민다면 결코 좋은 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제도적 해법을 모색할 때는 세심한 설계가 필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그 어떤 제도도 악이기 때문이다.
‘서민 저금리’보다 더 걱정되는 김 원내대표 발언은 “고소득 계층만 낮은 금리를 누린다”는 대목이다. 부자만 특혜를 받는다는 뉘앙스가 짙다. 여권 전반에서 손쉽게 목격되는 인식이다. 대통령도 4년 전 서울대 경제학부 강연에서 ‘부자에게만 원하는 만큼 저리 장기대출해 주는 현 금융 시스템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설파했다.
결론적으로 부자 장기 저리 대출은 장려할 일이다. 타인 자본을 끌어들여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규모 투자행위야말로 공동체 발전에 필수다. 큰돈과 인생을 건 그 시도가 바로 고용과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 과정에서 금융도 이익을 창출하고 이는 중소기업·스타트업과 서민 대출 여력 강화로 이어진다. 이런 동태적 선순환 촉진은 정부로부터 화폐발행권을 분점받은 금융사가 앞장서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거두 미제스는 “특권 여부를 판단하려면 개인이나 계급에 이익이 되는가를 묻는 대신 대중에게 이로운 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서민 이익으로 귀결되는 ‘부자 저금리’가 특혜일 수는 없다.
금리를 넘어 금융업 자체에 대한 오해도 만만찮다. 대통령은 얼마 전 “금융이 가장 잔인한 영역 같다”고 힐난했지만 긍정적 측면을 균형감 있게 계량해 봐야 한다. 때로 비정해 보이는 금융의 행태야말로 업의 본질이자 사회경제적 진보의 동력이다. 핵심 인프라로서의 금융이 엄정함을 잃으면 계약의 안전성이 위협받고 이는 국민경제 전체의 손해로 귀결된다. 연 2조원 규모의 은행권 사회공헌활동도 냉정함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금융은 여유 있는 쪽에서 부족한 쪽으로 돈을 융통해 주는 일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믿을 만한 대상(기업)을 식별한 뒤 적기에 신용을 공급해야 한다. 편리한 지급결제시스템으로 시장 참여자 간 정보 비대칭에서 오는 거래비용도 낮춰야 한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한국 금융회사들은 이 같은 본연의 업무를 대과 없이 수행해 왔다. ‘G10’ 진입이 분명한 증좌다. 거대자본 투입이 필수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산, 원자력의 만개도 파이낸싱 최적화 성공의 결과다.
한국 금융이 타성과 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있다는 비판은 적확하다. 대표 은행들도 이익의 90% 안팎을 손쉬운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폭리 경영으로 떼돈을 번다는 시각은 과도하다. 시중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5~10%선이다. 50조원 안팎의 자기자본을 투입해 얻는 3~5조원 이익을 폭리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ROE 20%를 오르내리는 해외 주요 은행은 물론이고 10%선인 한국 상장사 평균에도 못 미친다. 금융을 사회부조업으로 오해하거나 몰아간다면 성장과 복지를 모두 수축시킬 자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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