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칼럼]커지는 가격통제 유혹, ‘시장의 역습’ 걱정된다

2 weeks ago 5

바나나값-쌀값 향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
주가 상승은 “정부 정책이 8할 이상” 자평
서울-경기 아파트는 거래 묶어 가격 통제
정부 개입 강도 높을수록 리스크도 커져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그런데, 바나나는 왜 오르냐고. 수입 규제 품목도 아니잖아요. 공급 수량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게 바나난데….” 지난달 말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이재명 대통령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이렇게 캐물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과일 수입하려는 걸 다 알고 있고, 수입할 때도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는 송 장관의 답에 대통령이 “에이, 그런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당황한 송 장관이 “2023년 12월부터 시점을 고려할 때 환율 문제도 좀 생각해야 한다. 이때부터 환율이 굉장히 높았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바나나 토론은 “제가 추측하는 이유는 정부 통제 역량의 상실”이란 대통령의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장바구니 물가를 깨알같이 챙기는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왜 ‘바나나’였는지는 의문이다.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시점에 일반 국민, 자영업자들의 관심이 제일 높은 품목은 쌀값이었다. 추석연휴가 지나며 하락했지만 17일 기준 쌀 20kg 소매가는 6만6075원으로 1년 전보다 24% 높다.

1인당 쌀 소비량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데 쌀값이 급등한 이유는 정부의 통제가 과도하게 이뤄진 탓이다. 작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평년보다 쌀값이 떨어지면 재정을 투입해 가격을 예년 수준으로 떠받치는 법이다. 농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윤 정부는 양곡법 개정 대신 작년 10월 비축분 외에 26만 t의 쌀을 추가로 매입했다.

그 결과가 지금 쌀값이다. 공깃밥 가격이 2000원으로 올라 음식점 주인, 고객 모두 부담이 커졌다. 이쯤 되면 너무 많이 사들인 쌀을 과감히 풀어야 하지만, 끝내 양곡법을 개정한 새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가격 안정을 위해 재고를 일부 방출하긴 했지만 정부의 기본적 태도는 ‘햅쌀이 나오면 가격이 내릴 것’이란 거다. 그사이 일본에선 작년부터 이어진 ‘레이와(令和) 쌀 소동’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이시바 시게루 정부가 실각했다.

정부가 자산 시장에서 바나나, 쌀만큼 가격 문제에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품목이 주가와 집값이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코스피는 머잖아 4,000 선을 돌파할 기세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주식시장 상승분 중 8할 이상이 정책의 힘”이라고 자신했다.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상승세란 점에서 ‘8할 이상’은 과장돼 보이지만, 상법 개정 등 정부 주가 부양책이 큰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쌀값처럼 정부가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집값은 ‘10·15 부동산 대책’을 통해 꽁꽁 묶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3중 규제’로 묶인 서울시 전역과 인접 경기도 12개 지역에선 대출이 어려워져 현금부자가 아닌 이들은 집을 사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의 주택거래를 사실상 멈춰 세운 건 건국 이후 처음이다. 한 달여 전 ‘9·7 공급대책’에 대해 “칭찬도 비난도 없는 걸로 봐서는 잘한 것 같다”던 이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졌다.

어느 나라, 어떤 정부든 자산·상품·서비스 가격을 정치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개방된 시장경제 체제에서 글로벌 시장의 자금흐름, 시장 구성원의 욕망에 역행하는 정부의 가격 개입은 실패로 끝나거나, 큰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쳐나 주식, 금, 가상화폐를 등 모든 자산이 급등하는 ‘에브리싱 랠리’의 시대다. 주가를 올리긴 쉽지만, 부동산값을 안정시키거나 내리긴 대단히 어려운 환경이다. 집은 바나나처럼 단기간에 수입을 늘리거나, 빵처럼 찍어낼 수도 없다. 미국, 유럽 금융권에서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증시 고공행진과 관련해 “거품” “고평가” 같은 발언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3500억 달러(약 499조 원) 대미투자와 관련한 우려로 1420원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 등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인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과열이 아니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뿐 ‘영끌’, ‘빚투’에 대한 경고 한마디 없다.

반면 집값과 관련해선 “집값이 안정되고, 돈이 쌓이면 그때 가서 사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경험과 본능은 거래가 중단된 동안 주택선호 성향을 뒤집을 만한 파격적 공급대책이 없으면, 나중에 집값이 더 크게 오를 거란 쪽을 가리키고 있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조만간 금리를 추가로 내릴 전망이고, 우리 정부는 확장재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 정부도, 국민도 넘쳐나는 돈이 원하는 쪽으로만 흘러갈 거란 요행을 바라는 대신 ‘시장의 역습’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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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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