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심판은 새 정부 출범으로 마무리됐다. 이제 계엄 이슈는 사법부에 맡기고 새 정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70석 가까운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모든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그러나 개혁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득이 선행돼야 하고 야당과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본회의와 국무회의 의결 등 남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유감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고 상고심 적체를 해결하겠다는 것을 대법관 증원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종래 대법관 증원을 반대해 왔고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언급한 시점이 하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한 직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는 실질적 이유는 사법부에 대한 보복 내지는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물론 대법관 증원으로 상고심 적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번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임명권자인 이 대통령 임기 내에 대법관 16명을 순차로 증원하겠다는 것이다.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고 사법부 독립이라는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상고심 개혁 방안으로 상고허가제,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 등이 논의돼 왔다. 상고심 개혁은 대법원의 권리 구제 기능과 법령 해석의 통일 기능 중 어디에 방점을 둘 것인지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돼 있는 만큼, 학계 및 법조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 숙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다.
과거 미국에서도 행정부의 뉴딜정책 법안에 연방 대법원이 연이어 위헌 선언을 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신직인 대법관이 70세가 되면 대법관을 6명까지 추가로 임명할 수 있는 일명 ‘코트 패킹(Court Packing)’ 법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70세6개월 이상 된 대법관이 은퇴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추가로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사법부를 통제하려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실패했다. 반대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대법관 증원을 통해 사법부 장악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외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사법부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검찰개혁 법안 처리도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정권에서 검찰이 인지수사권을 남용해 이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먼지 털이식 수사를 했다는 점에서 검찰개혁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큰 틀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설치하는 것이 타당한지, 수사기관을 중대범죄수사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분리하는 것이 옳은지 등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있듯이 쇠뿔을 바로 잡으려고 소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사법개혁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다. 사법 시스템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고 망가진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힘없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사법개혁에서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은 개혁의 주체도, 개혁의 대상도 아니라 개혁의 지향점, 즉 국가와 국민이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