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베라’와 메디치 가문
유명하지만 수수께끼인 그림
‘봄’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보티첼리의 또 다른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걸려 있습니다. 두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패션 디자인이나 팝 가수들의 화보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등장했는데요.
이를테면 ‘비너스의 탄생’은 가수 레이디 가가의 2013년 앨범 ‘아트팝’ 재킷 사진이, ‘프리마베라’는 비욘세가 쌍둥이를 낳고 찍은 화보에서 패러디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르네상스 걸작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프리마베라’나 ‘비너스의 탄생’을 머릿속에 떠올리죠.
그런데 ‘프리마베라’가 이렇게 유명한 그림인 데 반해,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완벽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프리마베라’는 그림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논쟁적인 그림’으로 꼽힙니다.이 시기 유럽 미술을 생각해 보면 더 독특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들을 토대로 볼 때, 이 시기 미술가들은 대부분 교회의 의뢰를 받아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그리거나 왕족의 요청으로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인물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코드
그림 속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요정처럼 표현돼 있습니다. 먼저 가장 왼쪽에 있는 남성은 신들의 전령사, 머큐리(헤르메스)입니다. 날개 달린 샌들, 투구,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머큐리의 표현이죠. 그 옆 원을 그리며 춤추는 여자들은 ‘아름다움의 세 여신’(카리테스)이며 중앙에 있는 인물은 큐피드(에로스)와 함께 있어 비너스(아프로디테)로 추정합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있는 두 여성은 더욱 정체가 모호한데요. 학자들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참고해서, 왼쪽부터 플로라(봄의 여신), 클로리스(님프), 제피로스(서풍신)라고 추측합니다. ‘변신 이야기’에서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납치해 결혼하고, 그녀가 플로라로 변신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 인물들을 모두 합쳤을 때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 이유는 제피로스 클로리스 플로라를 제외하면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기에도 그림을 4등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들이 조각조각 짜깁기한 듯 독립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신을 그렸지만 세속적인 그림
이런 상황에서 ‘프리마베라’를 두고 ‘봄의 도래와 자연의 풍요로움’, ‘육체적 사랑에서 정신적 사랑으로의 승화’ 등 다소 추상적인 해석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술사학자들은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중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신을 그렸지만 실은 아주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세속적 모습은 바로 옷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신처럼 표현됐지만, 입은 옷은 당시 피렌체에서 유행한 패션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중앙의 비너스나 왼쪽의 머큐리가 메디치 가문 일원의 초상화라는 주장도 내놓았는데요. 그 단서는 이 작품이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걸려 있었고, 이 가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스팔리에라(벽이나 가구를 장식하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료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작품이 스팔리에라라면 그림의 내용은 좀 더 선명해집니다. 결혼을 기념해 아름다운 여신과 풍요로운 봄의 상징을 공간에 맞는 디자인으로 구성해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서로 만날 일 없는 신들의 짜깁기 구성은 어쩌면 ‘결혼사진’처럼 메디치 가문 일원을 신처럼 표현했거나, 이 그림을 받을 사람이 좋아하는 신들로 골라서 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보티첼리의 정원. ‘은행업과 직물 무역으로 15∼17세기 피렌체에서 번영한 메디치 가문의 취향’을 단서로, 다시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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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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