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테슬라는 또 한 번 기술의 미래를 시각적으로 선보였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가 던지는 공을 손으로 잡고, 안정된 자세로 걸으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단순한 기술 쇼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의 현실화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제 실제 산업 현장에서 도입을 고민해야 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진보를 단순한 기술의 속도 경쟁이 아닌, 인간을 위한 대안의 눈으로 바라볼 시점에 와 있다. 특히, 노동력 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 제조업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대안에 목말라 있다. 급속한 고령화, 청년층의 생산직 기피, 숙련된 인력의 은퇴로 인해 산업 현장의 노동력 공백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일손 부족을 넘어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일상화됐고, 중소기업일수록 이 위기를 더 빨리, 더 깊게 체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력을 무작정 충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건비 증가와 함께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우리나라 인구 구조 자체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술'일 것이다.
최근의 로봇 기술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는 산업용 팔이 고정된 위치에서 반복 동작만 수행했다면, 이제는 AI와 센서, 비전 기술이 융합된 지능형 로봇이 사람 옆에서 함께 작업하고,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 작업자의 동선을 인식하고 충돌을 피하며, 복잡한 공정도 스스로 학습하고 최적의 방식으로 동작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또, 테슬라의 옵티머스처럼 균형을 잡고 손으로 정밀하게 물건을 다루는 일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일 뿐 만 아니라,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사람은 보다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특히 반복적이고 힘든 작업으로부터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고령의 노동자도 안전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대체'가 아닌 '보완'의 관점에서 기술이 사람을 지원하는 구조가 된다.
한국의 스마트팩토리 정책은 지금까지 설비 자동화와 공정 데이터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지능형 협업 로봇을 기반으로 한 유연 생산 없이는 진정한 스마트 제조는 완성될 수 없다. 특히 다품종 소량 생산이 많은 중소기업일수록 고정된 자동화 설비보다는 상황에 따라 작업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AI 로봇의 도입이 더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로봇 기술은 정부가 추진 중인 리쇼어링 전략과도 긴밀히 연계될 수 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에서 제조업의 복귀를 유도하려면, 필연적으로 자동화를 통한 생산 효율 확보가 필요하다. AI 로봇은 국내 제조업이 고임금 구조 속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이러한 흐름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에 따라 제조업 전반에 AI와 로봇을 결합한 지능형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일본은 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협동 로봇을 중소기업 현장에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으며, 미국은 자국 내 생산 기반을 되살리기 위한 인프라 투자와 함께 자동화 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AI와 로봇 기술 하나하나의 역량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산업 현장에서의 실질적 활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로봇 도입에 대한 초기 비용 부담, 시스템 통합의 어려움, 운영 인력의 부족 등이 중소기업의 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기술 개발 뿐 만 아니라 현장 실증, 인력 양성, 도입 보조 등 전주기적 정책 지원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제조업은 여전히 한국 산업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이 뿌리가 약해질수록 국가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 제조업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은 더 이상 값싼 인력이나 장시간 노동이 아니며,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기술, 특히 AI 로봇을 중심으로 한 지능형 제조 체계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공장은 수백 명의 인력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소수의 숙련 인력과 다수의 로봇이 함께 일하는 지능형 협업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을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하며, 로봇을 한국 제조업의 '두 번째 근로자'로 육성하는 국가 전략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김정하 ㈜LS티라유텍 대표이사 jason@thiraute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