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트루먼쇼' 나온 동화같은 마을…꿈을 짓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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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트루먼쇼' 나온 동화같은 마을…꿈을 짓는 건축

타임지가 1980년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 10개 중 하나로 선정한 시사이드 주거단지는 신문, 잡지에 많이 소개되기도 하고 뉴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건축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대중에게는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트루먼쇼’라는 영화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트루먼쇼’에서 짐 캐리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인형 같은 존재로 등장하고, 시사이드 주거단지는 그런 인형의 집 같은 배경으로 나온다. 실제 시사이드를 가보면 18세기 미국 개척시대 초기 나무로 지은 마을 모습을 해 진짜 인형마을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마을을 디자인한 자이벡 부부는 아키텍토니카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플로리다에 많은 주거단지를 설계한 경험을 살려 주거단지의 역사에 남은 이 시사이드 단지를 설계했다. 그는 주거단지는 건축가가 몇 개의 주택 유형을 섞어 만들어서는 좋은 마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잡다해 보이는 마을의 우연적인 집합성이 마을의 특징이어야 하고, 이것을 한두 명이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단지 내 주택은 모두 개개의 건축가에게 맡기고, 그는 마스터플랜이라고 불리는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공통 규칙만 세웠다.

미국 시사이드 주거단지는 마을 중심을 강조하고 주택을 방사형으로 배치한 구조다.  구글 캡처

미국 시사이드 주거단지는 마을 중심을 강조하고 주택을 방사형으로 배치한 구조다. 구글 캡처

그가 디자인한 마을의 특징은 5분 내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마을의 중심이 있도록 한 것이다. 서부개척시대 마을의 기차역을 중심으로 살롱과 보안관실, 잡화상, 교회 등이 밀집해 있듯이 마을 중심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머지 주거 부분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며 2층 목조주택으로 짓게 하고, 옥탑층을 만들어 플로리다 앞바다 전경을 집집이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뒷골목을 통해서는 집에서부터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전체 600여 채 중에 300여 채가 자가 주택이고 나머지 300여 채는 외부인을 위해 호텔 등 임대용으로 구성했다.

‘트루먼쇼’를 보면서 우리가 정말 인형처럼 인형마을에 산다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디즈니랜드의 성이나 에버랜드 동화마을 같은 곳에서 산다면 우리 삶도 동화 같을까? 건축은 삶의 그릇이라고 표현되는데, 그러면 우리 삶이 동화처럼 좋은 스토리로 만들어지고 꿈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그런 환상적인 삶이 될까?

실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형의 집을 꿈꾸고, 전원주택이라도 짓게 되면 헨젤과 그레텔이 살았을 것 같은 동화 같은 집을 지으려고 한다.

제주 예레주거단지 조감도. 거주와 비즈니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개념을 적용했다.  플래닝코리아 제공

제주 예레주거단지 조감도. 거주와 비즈니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개념을 적용했다. 플래닝코리아 제공

미국 시사이드 주거단지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주거의 모습을 확 바꿀 휴양단지를 계획한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추진됐던 예래주거단지다. 초기 개념은 바람도 쉬어가는 단지라는 뜻의 에어레스트 시티다. 2012년 프랑스 칸에서 열린 MIPIM(국제 부동산 투자 및 개발 박람회)의 미래형 대규모 프로젝트 분야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계획안이다.

저층 빌라의 단지와 병원, 호텔, 콘도 등 고층의 다양한 기능을 포함해 거주와 비즈니스가 함께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주거단지로 제안됐다. 그래서 빌라에는 주거 공간과 함께 매 건물 1층에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업공간 또는 회의공간 등이 설치돼 있었다. 정적인 거주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인 삶이 일어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마을은 제주도의 특성을 살려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경사진 대지에 위아래 집들이 테라스, 필로티, 덱으로 겹겹이 놓이게 했다. 올레길과 두 갈래 길, 세 갈래 길의 개념을 적용해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마을 구성을 시도했다.

2006년께 추진된 이 사업은 유원지에 대한 법적 해석 문제로 대법원에서 개발 사업이 무효로 판결 나며 무산됐다. 저층 빌라 단지는 건물을 거의 다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중지돼 폐허처럼 남아 있다.

무언가 특이한, 거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는 바닷가의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인 거주 공간이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져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에 지어진 건물들을 헐 수는 없으니,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동화 마을로 세상에 다시 나와 빛을 보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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