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習, 긴장 고조 속 ‘세기의 회담’ 성과
中 위상-美 우선주의 강화로 상황 다르지만
해빙이냐, 신냉전 구조화냐 양 정상에 달려
경주 APEC 다자주의 불씨 되살릴 계기 돼야
일각에서는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미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인 서니랜즈에서 가진 정상회담을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온다. 서니랜즈 회담은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 간에 열린 첫 번째 비공식 정상회담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만남이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외교의 초점을 인도태평양으로 전환한 ‘아시아 선회(Pivot to Asia)’ 정책을 펼치자 중국은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다. 하지만 서니랜즈 정상회담을 거치며 양국은 ‘협력적 경쟁과 상생’으로 관계를 재설정했다.
물론 지금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확연히 높아졌고,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는 시 주석이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할 가능성도 없다. 트럼프 1기를 이미 경험해 본 중국은 나름대로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에 대비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들어 더욱 강해져 돌아온 미국 우선주의는 전 세계를 유례없는 불확실성과 대결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이끌며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공공재를 제공해 왔다. 그동안 미국은 안보 공약을 통한 글로벌 질서 유지, 자유로운 무역·통상 질서 주도 등의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러한 역할을 중단하고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이기적 초강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제기구나 레짐(체제)을 통해 작동하던 글로벌 거버넌스는 뒷선으로 밀려나고, 적나라한 힘과 이익의 잣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2년 전인 2023년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기간에도 조 바이든 당시 미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양국 정상은 펜타닐 등 마약 유통 차단, 인공지능(AI) 위험 대응 등 일부 사안에 대해 협력을 약속했으나, 첨단기술 수출 통제와 대만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1기의 대중국 공세를 대부분 이어받았고,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대중 견제는 더욱 강화됐다. 이름만 ‘디커플링’(탈동조)에서 ‘디리스킹’(위험 축소)으로 바뀌었을 뿐, 글로벌 기술·자원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하면, 경주에서의 회담 한 번으로 미중 대결 구조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주 회담은 현재의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 휴전’이라는 의미가 크다. 미중 양국 모두 현재의 전략 경쟁을 서로의 명운이 걸린 ‘질 수 없는 게임’으로 상정하는 한 대결 구도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경주를 계기로 서니랜즈 회담처럼 미중 관계가 관리 가능한 해빙의 길로 들어설지, 혹은 장기적인 신냉전의 구조화로 갈지는 두 지도자의 결단에 달려 있다.
주최국으로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은 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만반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경주는 한국의 외교역량은 물론이고 천년고도 경주에서 K컬처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다. 미중 간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는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의 실질적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외에도 한미, 한중, 한일 등 주요 정상들과의 연쇄 회담이 예상되는 만큼, 이재명 정부로서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관세 문제 및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동맹 현대화, 그리고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진전된 내용을 합의문에 담을 수 있다면 최상이다. 지금은 유례없는 국제질서의 전환기다. 트럼프발(發) 전방위적 관세 전쟁의 여파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위축되고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리는 이 시기에, APEC 회담이 개방과 협력에 기반한 다자주의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세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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