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국 내 전력사업 등 ‘알짜 프로젝트’ 경쟁
우리 기업 투자 美필리조선소서 핵잠수함 건조
관료주의보단 민간 통상 협력 통해 우위 점해야
기술 외교 강화 및 차이나 리스크 대응도 관건
23차례나 열린 장관급 만남에서 관세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정부는 ‘경주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것을 보면 뭔가 트럼프식 ‘빅딜(big deal)’ 냄새가 난다. 그는 집권 1기에는 중국을 후려쳐 관세 전쟁에서 베이징을 가볍게 굴복(!)시켰다. 그런데 올 4월 시작된 2차 관세 전쟁에서 예상치 못했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발목이 잡혔다. 체면을 구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보완할 히든카드가 필요했다.
바로 ‘1조 달러 투자 유치’이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이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가면 국내 정치적으로 중국과의 협상에서 깎인 체면을 상당히 만회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5500억 달러에 이어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 카드가 절실히 필요했기에 정상회담 바로 직전에 ‘톱-다운 방식’으로 타결시킨 것이다.
정부는 경주 협상의 성공을 자축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긴 아직 이르다. 트럼프가 몰고 온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한 고개를 겨우 넘었을 뿐이다. 다음 고개는 미국 땅에서 벌어질 ‘알짜 프로젝트 따먹기’ 경쟁이다. 도쿄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일본 기업이 투자 리스크가 적은 전력, 에너지 같은 공공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해 줄 것’을 권유하였다. 본격적인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 미국의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 따라서 우리 기업도 발전소 건설, 가스 터빈 수출 같은 알짜배기 사업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이번 경주 합의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보지 않은 미지의 대미 투자 게임(!)이다. 기업이 아니고, 정부가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한미 간 투자위원회에서 투자 사업, 투자 방식을 결정한다. 그다음에 우리 기업이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 협력을 한다. 이 같은 소위 ‘트럼프식 투자 방식’에 대응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관료주의이다. 이는 관료가 기업과 긴밀히 소통하지 않고 워싱턴과 협의한 결과를 기업에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같이 참여하는 새로운 게임의 룰이 필요하다.
이번 협상에서 금관 외교, 통상 관료의 노력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숨은 일등 공신을 찾으라면 우리 기업의 기술 외교이다. 사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세계 최초·최고의 기술은 일본보다도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윌리 시 하버드대 교수는 ‘이차전지 등에서 중국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나라는 바로 코리아뿐이다’라고 말한다. AI 경쟁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80%를 우리 기업이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은 대단하고 정말 배울 게 많다.” 기술 천조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다.
우리 기업이 필라델피아에 투자한 필리조선소에서 우리의 오랜 숙원인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게 되었다. 일본이 미국과 맺은 황금 군사동맹을 자축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단순한 한미 군사동맹을 복합적인 군사·산업·과학기술 동맹으로 격상하였다. 이에 AI, 6세대(6G)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을 담은 한미 과학기술 동맹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한미일 밀착의 반작용으로 생길 ‘차이나 리스크’도 잘 관리해야 한다. 1500억 달러를 쏟아붓는 ‘마스가(MASGA)’에 위기감을 느낀 베이징은 얼마 전 한화그룹의 미국 5개 자회사에 대해 제재를 하였다. 한미 조선 협력이 가져올 반사적 불이익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이번 경주 합의로 3500억 달러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면 안미경중 시대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술굴기를 내세우는 중국과 협력할 분야가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중국과도 적절한 산업 협력 네트워크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10월 30일에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희토류를 맞바꾸며 두 나라가 일단 해빙기에 들어갔다. 이런 초강대국의 화해 무드를 잘 활용하면 미국과 안보·통상 협력도 강화하고 차이나 리스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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