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설립된 한국조폐공사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석탄공사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공기업으로 꼽혔다. 신용카드와 전자결제 확산으로 실물 화폐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석탄공사가 폐업 절차를 밟는 것과 달리 조폐공사는 4년 전 흑자 전환하며 꾸준히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성창훈 조폐공사 사장은 지난 14일 “2023년 사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회사 미래가 불투명해 직원들이 위축돼 있었는데 이제는 위기보다 성장 전략을 논하는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공사 매출은 2023년 4400억원에서 지난해 51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0억원에서 18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매출은 2019년 기록한 공사 최대 매출(55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조폐공사의 변신은 화폐 제조 매출 비중 축소와 신사업 확대에서 시작됐다. 모바일 신분증, 디지털 상품권 등 정보통신기술(ICT)·핀테크 사업과 기념메달, 굿즈 등 문화사업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했다. 성 사장은 “올 상반기 기준 화폐 부문 매출이 전체의 18%밖에 되지 않는다”며 “화폐 제조에서 쌓은 위·변조 방지 기술 노하우를 살려 여권·신분증 사업, 기념메달 제조 등으로 매출을 다각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예술가와 협업하는 등 문화 굿즈 사업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세계적인 K열풍에 힘입어 조폐공사가 만들어내는 상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출시한 ‘돈 볼펜’은 파쇄된 화폐를 활용해 재물복 상징으로 인기를 끌며 20만 개 이상 판매됐다. 다음달 출시하는 고급형 ‘황금 돈 볼펜’은 선주문만 1500건이 들어왔다. 돈 방석·지갑·키링 등 다양한 굿즈를 차례로 출시할 계획이다.
‘예술형 주화’를 발행하는 방안도 한국은행 등 관련 기관과 논의 중이다. 성 사장은 “수집·소장 용도의 예술형 주화는 미국 영국 중국 스페인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 발행돼 매출을 올리고 있고 우리도 새로운 수출 상품으로 구상하는 단계”라고 했다.
단기 체류 외국인에게 여권 기반 신원정보를 발급하는 사업도 조폐공사가 추진하는 미래 성장 동력 중 하나다. 성 사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각종 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신원인증 절차에서 막히는 실정”이라며 “조폐공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관광객 디지털ID 발급을 정부에 제안하고 민간과의 협업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의 위·변조 방지 기술은 이미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공사는 지폐 위조 방지 기술을 예술품 보안에 적용, 디지털 워터마크로 작가 정보를 저장·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배우 겸 화가 박신양 씨의 작품에 디지털 워터마크 기술을 적용했다.
성 사장은 “세계 조폐기관이 화폐 발행량 감소로 몸집을 줄이는 상황에서 화폐 외 매출을 늘려가는 한국조폐공사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신사업을 계속 발굴해 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