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명예, 권력을 가져도 왜 불행할까… 행복을 가르는 기질과 수용력”[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1 day ago 1

한낮 햇살 아래 웃음을 터뜨린 소년의 모습이다. 돈과 명예, 권력과 무관한 어린 소년의 명랑한 표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한낮 햇살 아래 웃음을 터뜨린 소년의 모습이다. 돈과 명예, 권력과 무관한 어린 소년의 명랑한 표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의 기준

행복은 객관적일까, 주관적일까. 돈, 명예, 권력 등은 분명 많은 사람이 원하는 행복의 외적 조건이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도 웃음과 행복한 표정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유가 뭘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행복 감정은 늘 유동적이다. 한쪽에는 결핍에 따른 고통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과잉에 따른 무료함이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통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고뇌의 형태는 부족, 곤궁, 생존을 위한 근심이지만 이러한 고통이 제거되면 또 다른 고통이 나타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따라서 궁핍함에서 벗어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성적 욕망, 사랑, 질투, 증오, 불안, 명예욕, 금전욕, 질병 등 새로운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싫증과 무료함이 인간을 괴롭힌다. 권태와 따분함을 몰아내면 다시 처음의 결핍 고통이 시작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인생이 고통과 무료함 사이에 내던져졌다고 본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핍과 과잉 사이에 끊임없이 오고 감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란 이야기다.쇼펜하우어는 행복이 타고난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특성이 강하다고 본다. 사람마다 쾌락과 고통을 담는 성격의 ‘수용력’, 즉 그릇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각자 쾌락과 고통을 담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다는 뜻이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개인에게는 그에게 본질적인 고통의 양이 그의 본성을 통해 결정적으로 정해져 있어 뇌의 형식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그 고뇌의 양은 계속 비어 있지도 가득 채워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또 다른 고통으로 지금의 고통이 사라진다 한들 새로운 고통이 나타난다. 이때 개인의 고통은 외부로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질(그릇)에 의해 정해진다. 신체적인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증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일한 분량이 정해져 있다. 명랑한 사람이 10개의 고통을 견딘다면 우울한 사람은 2∼3개의 고통도 버겁다.

조증과 우울증을 묘사한 19세기 석판화. 행복과 불행은 외적 조건보다 각자의 기질과 수용력, 즉 마음의 그릇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쇼펜하우어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조증과 우울증을 묘사한 19세기 석판화. 행복과 불행은 외적 조건보다 각자의 기질과 수용력, 즉 마음의 그릇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쇼펜하우어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수용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고통은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다. 외적인 원인이 없다면 불쾌감은 수많은 점으로 분산돼 있다. 외부의 자극을 받게 되면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은 흩어진 모든 고뇌를 하나의 점에 집중시켜 큰 고통으로 채운다. 슬픔의 원인이 되는 외적 동기는 신체에 분산된 고통을 집중해 강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나중에 흩어지면 사소한 고통이라 가볍게 털어 버릴 수 있다. 하나의 큰 고통이 느껴지면 다른 고통은 덜 느껴진다. 기질의 그릇 안에서 고통과 기쁨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쇼펜하우어는 이같이 말한다. “큰 고뇌가 있으면 보다 작은 고뇌는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되고, 이와 반대로 큰 고뇌가 없으면 아주 사소한 언짢은 일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 빈자리가 생겨 작은 걱정이 들어와 큰 걱정으로 과장되는 일이 많다. 우리를 괴롭히는 하나의 걱정이 사라지면 다른 걱정이 생겨나는데, 이미 고통의 소재는 있었지만 의식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용력이 없었기 때문에 인식될 수 없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소한 걱정이 과장돼 크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이미 사라진 가벼운 근심이 크게 부풀려져서 쓸데없는 고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큰 불행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처음에는 충격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분은 정상으로 회복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행복이 찾아와도 전보다 현저히 지속적으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변화가 생기는 순간만 잠깐 보통 이상 강하게 느낄 뿐이다. 착각했던 슬픔이나 기대했던 기쁨은 얼마 가지 않는다.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가져온 상상의 슬픔이나 기쁨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자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자살을 일으키는 동기는 다양하다. 인생에 불행이 닥쳤다고 해도 모두가 자살을 택하지 않는다. 사람 기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자살은 외적인 조건의 변화가 아닌 내적 상태, 신체적인 상태의 변화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외적인 조건이 좋지 않아도 기쁨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이 특정한 외적인 객관적 관계에서만 생긴다고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가령, 경제적인 궁핍과 같은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의 삶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쇼펜하우어.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쇼펜하우어.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매번 주관적으로 규정된다. 우선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크게 작용한다. 만약 고통이 상대적으로 느껴진다면 우리는 명랑함을 통해 행복을 만들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쾌활함이나 우울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나 신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행복의 외적 조건인 돈, 명예, 권력이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명랑한 기분을 갖고 기쁨을 느끼는 일은 외적인 조건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웃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세상을 밝게 볼 때 기쁨은 커지고 슬픔은 줄어들 것이다. 좋은 결과에만 웃지 말고 그냥 크게 웃는 것으로 시작하면 인생에 행복이 따라올 것이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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