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0년 후의 한국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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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20년 후의 한국 반도체

두 명의 장씨를 빼고 중국·대만 반도체 역사를 얘기하기 어렵다. 대만에 TSMC를 창업한 장중머우(張忠謀)가 있다면 중국 최대 반도체 영웅은 SMIC를 세운 장루징(張汝京)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두 사람은 각각 저장성 닝보와 상하이 태생으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를 거쳤다. 이 때문에 영어 이름인 모리스 창(장중머우)과 리처드 창(장루징)으로 더 많이 불린다.

중국·대만의 반도체 영웅

이들은 큰 족적을 남겼다. 장중머우는 1987년 TSMC를 설립해 고객 주문대로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개척했다. 20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2000년대 들어 반도체 후발국이던 대만을 사실상 파운드리 분야 절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를 넘어 이제는 ‘반도체업계의 제우스’로 불릴 정도다.

장루징은 신격화된 장중머우와 척지며 성장했다. 1990년대 후반 대만에서 투자를 받아 스다반도체란 회사를 세워 웨이퍼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TSMC의 견제 속에 뜻을 펼치지 못했다. 급기야 1999년 스다반도체 대주주가 회사를 TSMC에 매각하면서 장루징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이 중국 정부였다. 제조업 특급 인재 1000명을 귀화시키겠다는 ‘천인 계획’을 추진하던 때다. 장루징은 2000년 유소년기를 보낸 대만을 등지고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SMIC를 창업해 TSMC와 일전을 벌였다. 천하의 중국이라도 기술장벽이 높은 파운드리에서 별수 없을 것으로 봤지만 결과는 달랐다. 설립 20년 만인 2020년대 들어 SMIC는 글로벌 빅3 파운드리로 도약했다. 이제 장루징은 ‘중국 반도체의 대부’로 대우받고 있다.

베트남에도 장루징급 대열에 오르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 ‘베트남의 삼성전자’로 통하는 FPT그룹의 쯔엉자빙 회장이다. 공교롭게도 ‘쯔엉’이라는 성씨도 한자로 표기하면 장(張)이다. 베트남 장씨인 쯔엉자빙은 1988년 전자기기 수입업으로 시작해 2022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메모리나 파운드리보다 한결 쉬운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후공정에 집중했다. 베트남의 강점인 풍부한 인적자원을 투입하면 손쉽게 한국과 중국, 대만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따라 하는 베트남

예상은 적중했다.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가성비 좋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베트남으로 가고 있다. 최근엔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진출 속도가 빠르다. 의대 열풍과 대기업 쏠림 탓에 반도체 인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하는 수 없이 베트남행을 택하고 있다.

호기를 잡은 베트남 정부는 ‘중국 제조 2025’를 본떠 반도체 개발 20년 계획을 세웠다. 2050년까지 팹리스 왕국을 넘어 한국, 중국, 대만에 필적하는 메모리·파운드리 강자로 우뚝 서겠다는 전략이다.

쉽지 않은 목표지만 난공불락이라고만 여기긴 힘들 것 같다. 대만과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도 20년 축적의 시간을 거치면 얼마든지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때쯤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어떨까. 제조업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의대 광풍 속에 반도체 영웅은커녕 평범한 공학도조차 구하기 힘든 작금의 상황을 보면 걱정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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