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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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경기 광교테크노밸리에는 20여 년째 놀고 있는 2만5171㎡ 규모의 공터가 있다. ‘황우석 바이오장기 연구센터’ 부지다. 경기도는 200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대와 센터 건립 협약을 맺었다. 서울대의 황우석 박사 연구진이 이곳에서 인간에게 이식 가능한 무균돼지의 장기를 생산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센터 건립은 이듬해 말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백지화됐다. 해당 부지는 현재 나무와 풀만 무성히 자란 채 방치돼 있다.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힌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옛이야기 된 '줄기세포 강국'

한국은 한때 줄기세포 연구 강국으로 불렸다. 세계 유수 과학자들의 요구로 서울대병원에 ‘세계 줄기세포 허브’가 문을 열기도 했다. 황우석 사태가 모든 걸 바꿔놨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던 황 박사의 논문은 취소됐고, 허브는 문을 닫았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장기간 중단됐다.

한국이 멈춰선 사이 경쟁 국가들은 치고 나갔다.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세계 처음으로 난자 대신 체세포를 이용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개발했다. 그는 이 연구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재생의료법을 제정하며 제도적인 지원에 나섰다. 초기 임상시험만 마치면 줄기세포 치료제를 연구뿐만 아니라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중국은 2010년 줄기세포 연구를 ‘국가중대과학연구계획’으로 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미국에서 iPS 세포 기반의 척추 재생 치료제 임상에 나서는 등 한국보다 앞선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건의료산업 기술 수준 평가’에 따르면 미국의 줄기세포 기술 수준을 100%로 봤을 때 한국은 80%로 일본(91.5%), 유럽(86.5%)은 물론 중국(86%)에도 뒤처졌다. 2년마다 시행되는 이 평가에서 한국은 2022년 82.5%, 중국은 80%였다.

절실해진 규제 합리화

한국은 2019년을 마지막으로 줄기세포를 비롯한 세포·유전자 치료제 허가가 이뤄진 사례가 없다. 매년 2만 명 넘는 환자가 줄기세포 원정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적 지원에 나서긴 했다. 2020년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을 만들어 중대·희소·난치질환 환자가 개발 단계에 있는 줄기세포·유전자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월에는 이 법을 개정해 대상 범위를 모든 질환군으로 확대했다.

여전히 허들은 높다.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임상 치료’는 중대·희소·난치 질환을 대상으로만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환자들이 항암 등 중대 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면역력 향상, 노화 억제 등 다양한 목적으로 첨단재생의료 시술을 받을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2024년 201억달러(약 28조원)에서 2030년 898억달러(약 125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난치병 정복과 ‘황금 시장’ 공략을 위해 정부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더 이상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취소된 건 황 박사의 논문이지, 바이오 강국의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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