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자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1 month ago 9

[데스크 칼럼] 문자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김구 선생)

스위스 사람들이 ‘스위스’라는 한글을 보고 너무 재밌어 한다고 한다. 산속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그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라는 두 산 사이에 창을 든 사람(‘위’)이 보인다는 얘기다. 알프스와 ‘용병의 나라’에 자부심이 강한 스위스 사람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리 문자인 한글이 시각적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꽤 알려졌다.

문자의 조형성을 얘기할 때 최우선은 역시 한자다. 상형(象形) 문자는 그림 문자라는 뜻이다. 그림에서 시작한 글자니 균형과 대칭의 미감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象形의 象은 코끼리를 그린 것이다. 코끼리의 넓은 귀와 긴 코, 어금니, 다리와 꼬리. 정면에서 걸어오는 코끼리가 보인다.

그림 같은 문자는 많다. 아랍 문자가 그렇고 벵골 문자, 크메르 문자와 타이 문자도 독특한 모양으로 흥미를 끈다. 이들 문자는 유려한 곡선을 사용했다. 한글은 곡선과 직선이 결합한다. 알파벳도 마찬가지다. 쌍벽(雙璧)이다.

한글 조형미 알파벳과 쌍벽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은 기하학적이라는 것이다. 상징 기호로 이뤄져 있지만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기본 구성은 네모(ㅁ)와 세모(ㅅ) 그리고 원(ㅇ)이다. 한 귀퉁이 열린 네모(ㄷ), 두 귀퉁이 터진 네모(ㄱ, ㄴ)도 있다. ‘오징어 게임’ 포스터는 ㅇ과 ㅿ, ㅁ를 강조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글은 조합을 통해 조형성을 획득한다. 3분할 구도로 완결한다. 자음, 모음, 받침이 한 글자를 이룬다. 셋이 사각형(□) 안에 자리 잡는다. 물론 자음, 모음 구조 글자도 많다. 정삼각(△), 옆으로 선 삼각(◁) 형태를 띠기도 한다. ‘시민’은 ◁과 □ 디자인 조합이다. 여기에 대칭과 비례의 미학이 숨어 있다.

‘봄’ ‘몸’ ‘꿈’ 같은 글자는 좌우 대칭을 이룬다. ‘표’ ‘응’은 상하 대칭이 완벽하다. 특히 ‘응’은 동글동글한 게 귀엽기까지 하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도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추상은 느끼는 것이다. 몬드리안 추상이 한글을 닮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엿비 여김이 한글 창제 철학

외국인 중 한글을 자판으로 칠 때 레고나 테트리스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음, 모음, 받침이 하나씩 결합하는 것을 보면 벽돌로 담장을 쌓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를 가장 뚜렷하게 실체화하는 문자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이런 기하학적 조형성이 일찍이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당연했다. 김환기와 이응노의 ‘문자 추상’은 한글이 조형하고 상상하는 문자임을 보여준다. 얼마 전 백은선 시인이 시집을 발표했다. <뾰>다. 시 제목이기도 한데, 기막히다. 국어사전에 이런 단어는 없다. ‘뾰’는 좌우 대칭의 극치를 보여준다. 분절하면 ‘보+보’ 두 글자가 달려간다. ‘쀼’도 같다. 파자하면 ‘부부’다. 글자에 사랑이 넘친다. “쀼~쀼~” 문화는 모두에게 행복을 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한글이 장면마다 촘촘히 박혔다. 간판, 표지판, 노래 가사. 한글이 황금빛 ‘혼문’처럼 퍼져간다. 세종의 마음이 끝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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