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재정준칙 제도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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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재정준칙 제도화 시급하다

2차 민생회복 지원금 신청이 진행 중이다. 1차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액까지 합치면 총지급액은 14조원에 이르며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0.6%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다. 민생회복 지원금은 얼어붙은 소매 경기를 진작하는 데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고 올해 경제성장률을 0.6% 내외로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생회복 지원금이 대부분 신규 국채 발행으로 조달돼 중앙정부 채무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 합계) 비율은 52%로 미국(121%) 영국(101%) 독일(64%) 프랑스(113%) 일본(237%) 대비 낮지만 재정이 건전한 스웨덴(33%)과 덴마크(30%)보다는 높다. 2023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국채이자 비율도 0.93%로 미국(3.85%) 영국(3.07%) 프랑스(1.87%) 일본(1.20%)보다 양호하나 독일(0.87%) 스웨덴(0.74%) 덴마크(0.66%)보다는 높다. 지금까지 통계를 보면 한국 재정 상태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에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다른 국가보다 훨씬 빠르고 출산율은 잘 알려져 있듯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복지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하고 이를 뒷받침할 젊은 인구는 줄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국가채무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전통적 경제이론에 따르면 국가채무를 늘리는 정부 지출은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을 이룰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저축(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의 합)을 감소시키고, 국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시장 신뢰가 저하해 어두운 전망을 초래한다. 따라서 민간 투자와 내구재 소비 감소가 이어져 경제가 위축된다.

또 높은 수준의 국가채무는 정부의 재정정책에도 제약을 줘 경기 변동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국가채무 증가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저성장은 국가채무를 늘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 극단적으로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가 생기면 이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국가적 재난 상태로 번질 수도 있다.

물론 국가채무의 긍정적 면을 강조하는 반론도 있는데, 정부가 국가채무를 통해 교육과 사회간접자본 등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높은 나라는 경제성장이 잘 안 된다는 실증 분석이 상당수 있는 것을 보면 국가채무가 나라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채무가 경제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국가채무가 없을 수는 없으니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용인해야 할까? 경제학자들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경제성장이 저해될 것이라 가정하고, 그런 수준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한 수준은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경제 규모가 작은 편이고, 유럽에 있는 국가처럼 채무불이행 위험에 처했을 때 거대한 중앙은행(ECB)의 도움도 받을 수 없으며, 수출 위주 경제이기 때문에 대외 신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은 주요 선진국보다 더 낮은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재정 운용의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절한 재정준칙을 반드시 마련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민생회복 지원금 같은 소비성 지출보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지방 하천에 소규모 댐을 만들거나 안정적인 자연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등 생산적 지출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더욱이 현재의 소매 경기 부진은 고령화로 인한 개인 소비 감소와 온라인 거래 확산 등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단기적 재정 지출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장기적 구조 개혁과 함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경기 회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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