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재정 운용의 묘가 절실하다

1 month ago 13

[다산칼럼] 재정 운용의 묘가 절실하다

국가 재정 운영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지난해 104조8000억원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예산 편성이 불가피했던 2020년, 2022년에 이은 세 번째 대규모 적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4.1%로 2020년 5.4%, 2022년 5.0%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국채 이자 비용은 2020년 18조원에서 2024년 24조원으로 늘어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채로 100조원을 만들었으면 이 돈으로 그 이상을 만들어내 얼마든지 갚을 수 있다”며 확장재정 기조를 정당화했다. 재정 여력이 매우 취약하지만, 한편으로 경제성장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재정 운영의 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재정수지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기 진작을 위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에 이어 72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이 편성됐다. 재정이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할 테지만, 재정 건전성 훼손 우려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따라 향후 5년간 36조원 규모의 추가 세수 창출이 기대되지만 지출 증가도 계속될 전망이다. 재정 효율성 제고를 위한 비상한 노력이 요구된다.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인상에 노출된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지원책이 시급하다. 통상 위기 대응, 사회안전망 제고, 민생 지원을 위한 재정 소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과감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27조원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국채 의존도가 급증함에 따라 재량적 지출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 사업비도 원점에서 살펴보는 혁신의 자세가 중요하다. 일론 머스크가 주도한 미국 정부효율부의 기본 정신은 정부가 반드시 할 필요가 없거나 민간이 더 효율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부문을 과감히 줄이겠다는 것이다. 머스크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스스로 예산이나 조직의 존재 타당성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유명무실해진 예비타당성(예타) 제도가 정상화돼야 한다. 1999~2019년 144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둔 예타는 정치권의 개입으로 종이호랑이가 됐다. 예타 면제 대상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확대됐다. 국가 균형발전 등의 명목으로 정책적 면제 비율도 크게 늘었다. 사회간접자본(SOC)에 혜택이 집중되면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예타 면제도 성과가 날 수 있도록 사업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도 손질이 필요하다. 교육교부금은 2015년 39조4000억원에서 올해 72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16~2024년 교육교부금은 연평균 6.9% 늘어난 반면 국내총생산(GDP)은 4.4% 늘었다. 초·중등 학령인구는 340만 명 줄었다. 교부금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용된 금액이 31조원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GDP 대비 초·중등교육 예산 비율은 OECD 평균인 1%를 상회하지만 고등교육 예산 비율은 0.7%에 불과하다. 교육교부금 조정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고등교육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고민해야 한다.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 개선이 시급하다. 비금융 공기업 부채는 2023년 545조원으로 전년 대비 28조원 증가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 등 SOC 및 에너지 공기업이 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 크다. 물가 안정을 위해 요금 인상을 불허한 것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공요금의 단계적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다. 국책사업 추진에 공기업 자금을 동원하는 관행도 시정돼야 한다. 공기업의 부채 관리를 위한 종합 대책이 요구된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의 경제 위기는 주로 재정 위기에서 비롯됐다. 양호한 재정 건전성이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1등 공신이다. 나라 곳간이 새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저성장·양극화의 선진국병에 빠지기 쉽다.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는 남겨둔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재정 위기가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재정 운영 해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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