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칼럼] 다카이치의 日과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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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다카이치의 日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총리 지명선거가 열린 지난 21일 일본 중의원.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군, 237”(과반 233표)이라는 개표 결과 발표 순간 잠시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다카이치의 모습은 그가 처한 불안정한 정치적 현실을 잘 보여준다. 벌써 ‘단명 총리’에 그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강한 일본’이라는 신조만큼 만만치 않아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면 일본 정계는 물론 한·일 관계에도 파란을 불러올 것만 같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다카이치 총리 체제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예상과 달리 ‘젊은 피’ 고이즈미 신지로에게 낙승을 거뒀다. 자민당 첫 여성 총재에 이어 일본 최초 여성 총리라는 영광을 쉽게 거머쥘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엔 26년간 자민당의 연립정권 파트너이던 공명당이 돌아섰다. 자민·공명 연정 붕괴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는 정권 교체의 다시 없는 호기였다. 총리직 양보를 내걸고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과의 야권 연정에 나섰다. 하지만 유신회가 손을 잡은 건 ‘여자 아베’ 다카이치였다.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선 다카이치와 보수 우익 유신회의 결합이라는, 한국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러운 조합의 탄생이다.

다카이치와 요시무라 히로후미 유신회 대표는 연정 수립 최종 합의를 위한 당수 회담에서 양당이 “국가관을 함께하는 당”이라며 ‘군사강국 일본’이라는 목표에서는 찰떡궁합임을 보여줬다. 중도 보수인 공명당이 자민당의 우경화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해 왔다면 유신회는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유신회가 연정 조건으로 요구한 헌법 개정과 안보 강화는 다카이치와 자민당 강경파 입장에서도 불감청 고소원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카이치는 취임 첫날부터 방위비 증액 등을 담은 ‘안보 3법’ 개정을 지시했다.

이런 일본의 변화에 가장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이다.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가 순조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신뢰를 쌓았다고는 하기 어렵다. 다카이치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선을 넘거나 과거사, 독도 문제로 충돌이 이어지면 훈풍은 순식간에 삭풍으로 바뀔 수 있다. 지난해 방위상 신분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 기하라 미노루를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 임명하는 등 강경 보수 인사들이 요직에 입성한 것도 불안 요소다.

물론 ‘일본의 대처’를 꿈꾸는 다카이치가 한·일 관계를 아베·문재인 정부 시대로 되돌리는 자충수를 둘 이유는 별로 없다. 이재명 정부 출범 때 강경하던 대일 발언을 상기하며 일본이 긴장했듯, 우리 역시 다카이치의 과거 언행에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존재와 미·중의 패권전쟁 격화는 싫든 좋든 한·일의 협력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대통령 이재명’이 다르듯 ‘총리 다카이치’도 다를 수 있다.

다카이치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다음 주 한국을 찾는다. 이 대통령은 경주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자는 메시지를 내놨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일본에 급파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역시 취임 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국가다. 제대로 의사소통해 나가겠다”며 우리 측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확장 재정을 중시한다는 공통점 외에는 이념적으로 거리가 먼 두 사람이다.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이던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 때와 같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양쪽 진영엔 언제든 혐한 언어를 쏟아내거나 죽창가를 부를 준비가 돼 있는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그럴수록 더 조심스럽게 한·일 관계를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도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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