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 병자년 남한산성 국난과 흡사
韓에 가혹… “동맹도 차별” 트럼프팀 방침
“밟는 발도 뚫린다”… 동맹의 언어 아냐
경주 회담 앞두고 필요한 건 ‘절대 고독’
야만적 힘이 정의던 400년 전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59일 만에 투항했다.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와 화친하자는 주화파가 맞선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학자 한명기에 따르면 조정에선 95 대 5 비율로 싸우자는 쪽이 압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의 선택은 5% 소수파가 제시한 길이었는데, 굴욕적일지언정 피해는 최소화하려던 선택이었다.
당시엔 우리가 오랑캐라 배척하던 세력이 남한산성을 에워쌌는데, 지금은 미국이 70년 동맹을 ‘남한산성’에 몰아넣었다.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배고픔을 딛고 서게 했던 미국이 국난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역설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 올 예정이다. 8월에 이어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지금 3가지를 묻게 된다. ①트럼프는 왜 유독 한국에 모질게 나오나 ②대미 투자 총액을 줄이는 등 우리 부담을 덜 길은 없나 ③투자협상 타결 이후 한미동맹은 온전할 수 있나.①에 대한 답은 상대국을 대미 충성도에 따라 차등 대우하겠다는 트럼프 캠프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약(弱)달러를 추구한다는 정책이 정리된 이른바 ‘스티븐 마이런 보고서’를 보자. 그곳에선 트럼프의 경제·안보 정책에 얼마나 잘 따르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관세를 차등해서(graduated tariffs) 부과하겠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우리 눈에 일본은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한다. 한국 정권교체기마다 등장하는 중국 경사(傾斜)론도 일본엔 없다. 트럼프 사람들이 한국에 더 가혹해 보이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②와 관련해 투자 총액도 줄이고, 지분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양 갈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국이 자신들 요구를 100% 이행할 여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건을 누그러뜨릴 기미는 안 보인다. 트럼프식 협상 전략일 수도 있고, 이재명 정부의 혼을 쏙 빼놓아 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대미 수출품에는 대체로 25% 고율 관세가 붙고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미국 편만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는 한미 협상의 결론은 물론 과정까지 주시하고 있다. 동맹의 모범국 한국이 굴복당한다면 어떤 나라가 미국의 동맹 리더십을 흔쾌히 따를까.
이럴 때일수록 아쉬운 것이 한국 보수의 역할이다. 한미 간 가치동맹을 주도해 온 그들이라면 국익의 이름으로 협상을 도울 기회다. 하지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현 여권에 대한 정치적 정서적 반감 탓일 텐데, 하책(下策)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미동맹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질문 ③에 대한 답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의 “한국을 밟는다고 밟아지는지 한번 보라. 밟는 (미국의) 발도 뚫릴 거다라고 미국에 말했다”는 설명은 놀랍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이건 동맹끼리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 없이 중국과 일본을 맞상대할 방법은 없지 않나.하지만 지금처럼 밀린 월세 받아 가듯 동맹의 혜택을 받아내겠다는 건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으로 승복하기 어렵다. 결국 가치동맹이 훼손된 자리에는 계약동맹이 들어설 것이고, 피를 나눈 혈맹이 아닌 필요할 때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잘 작동되는 듯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에 미국이 한국을 위한 안보개입을 이행할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토동맹은 즉각 개입이지만, 한미동맹은 ‘각자의 헌법적 절차를 거친다’는 지체 요인이 있다.
협상 타결은 미국이 요구를 양보해야 가능하다. 그 대신 우리는 뭘 줄 수 있나. 결국 전략적 유연성이든, 중국 문제든 ‘동맹 현대화’로 이름 붙인 미국의 동맹구상을 수용하는 어딘가에 길이 놓여 있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대좌가 다가올수록 이 대통령은 외롭다고 느끼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엊그제 퇴임을 앞둔 이시바 일본 총리가 2차 대전 패전 80년을 맞아 왜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치가 막지 못했는지에 대해 글을 남겼다. 내용 자체보다 그런 글을 마무리하기까지 늦은 밤 홀로 생각에 잠겼을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절대 고독의 시간이다. 동맹을 남한산성에서 꺼내는 일은 미국도 할 수 있지만, 이 대통령도 할 수 있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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