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미워하는 밤
그대를 진심으로 미워하면
그 미움이 그대에게 가닿을까
그 미움이
타로 카드처럼
그대를 귀 기울이게 할까
―허연(1966∼ )
시를 읽다 보면 미움이 마음으로, 마음이 미움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게 그거 아닌가? 미움과 마음은 앞과 뒤처럼 붙어 있다. “그 마음이 그대에게 가닿을까” 하고 슬쩍 바꿔 읽어도 말이 된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한다는 건 누군가를 깊이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 죽기를 바랐던 그 마음처럼” 미워하는 상대라면 그는 화자에게 중요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심으로 미워”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진심이라면, 미움은 사람의 영혼을 잠식한다. 놓아주지 않는다. 편히 잠들 수 없게 한다. 화자는 기약 없는 미움에 사로잡힌 자로서 “기다림의 개”로 살아야 한다. 이 시에서 중요한 건 어순이다. 개의 기다림이 아니라 기다림의 개다. 개의 기다림은 끝날 수 있지만 기다림의 개는 끝을 모른다. 분명히 다르다. 당신에게 진심으로 미운 사람이 아직 있다면 당신은 밤마다 지하 10층까지 영혼을 내려보내고 그곳에서 “기다림의 개”로 살고 있을 것이다. 미움은 사랑에서 파생된 것.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일은 다른 뿌리를 가진다. 이 시는 미움으로 시작해 캄캄한 사랑으로 끝난다. 기다림의 본질을 아는 개는 기다림에 복종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자신을 잊을 것이다. 기다림은 이윽고 개가 된다. 당신이 “기다림의 개로 살아가는 밤”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밤 이 시 앞에서 엎드려 울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시 아닌가.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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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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