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언제나 논쟁 속에 등장하지만 결국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이메일과 모바일 메신저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새로운 기술은 통제의 어려움을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명해진 것은 그런 우려보다 기술이 가져온 사회적 편익과 진보가 훨씬 컸다는 점이다.
지금 논쟁의 중심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있다. 자금세탁 위험, 통화정책 영향 등 다양한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스테이블 코인은 오히려 정부가 금융 흐름을 더욱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실시간으로 추적 가능하며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유에스디코인(USDC)을 활용해 불법 자금 동결과 회수를 했다. 현금보다 훨씬 강력한 정책 집행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생태계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산의 토큰화, 디지털 증권화, 글로벌 지급결제가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지는 흐름 속에서 원화가 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못한다면 구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스트레이츠엑스(Straits X)’를 통해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일본은 엔화 스테이블 코인에 관한 법적 체계를 완비해 주요 금융회사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홍콩은 ‘e-HKD’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구축 중이며,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 규제법안(MiCA)에 유로화 스테이블 코인 프레임워크를 포함했다. 이런 움직임은 디지털 통화 주권이 미래 금융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됐음을 보여준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토큰증권발행(STO) 시장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K팝,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산업에 글로벌 투자자가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마련된다면 한국은 콘텐츠 금융의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부재한 가운데 국내 이용자들은 테더(USDT), USDC 등 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대체 사용한다. 이 때문에 사용은 이뤄지지만 제도권의 감독과 통제는 작동하지 않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오히려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화하고 관리하는 것이 자금세탁 방지와 건전한 유통질서 형성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을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통제를 넘어선 투명한 감독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이유다.
스테이블 코인과 같은 신기술을 적절히 제도화하고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디지털 자산 시대에 걸맞은 금융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