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였던 법정 스님은 수필 ‘거꾸로 보기’에서 우연히 가랑이 사이로 보게 된 뒤집힌 풍경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고 전했다. 고정관념이나 관습을 버리면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참된 모습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바이오업계에 관행처럼 굳어져 ‘거꾸로 보기’를 권유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해외 비즈니스 개발 시 유명 콘퍼런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점이다. 매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JP모간 콘퍼런스와 바이오USA, 바이오유럽 등 3대 콘퍼런스는 전 세계 생명과학 관계자 수만 명이 모여 기술이전과 투자, 기술 공동개발, 인수합병 등을 논의하는 만남의 장이다. 바이오USA의 경우 국가별 참여율을 보면 미국 다음으로 수년째 한국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행사장 가장자리에 마련된 소형 미팅 룸에서 바이오벤처들은 해외 제약회사와의 기술이전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미팅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 미팅 시간은 30분, 다른 미팅을 위한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20분 내외다. 참가 비용도 만만치 않다. 행사 기간 숙박비는 평소보다 3~4배 이상 높으며 개별 미팅이 가능한 풀 패키지 입장료는 인당 500만원 수준이다.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파트너링 수단인지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시간 장소에 제한이 없는 화상 미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자. 화상 미팅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뒤 대형 콘퍼런스장에서 해외 파트너를 만나면 보다 효율적인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해외 파트너 정보를 제공하는 매칭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빅파마 위주의 협상에 대한 거꾸로 보기다. 벤처기업들은 기술이전 파트너로 빅파마를 집중 공략한다. 빅파마는 주로 후기 임상 단계 기술을 선호하는 반면 우리 바이오벤처들은 초기 임상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 보니 협상은 장기화되고 때로는 빅파마 담당자가 이직해 교착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최근 해외 바이오 시장에서 공격적인 중소형 제약회사들의 반란이 화두다. 금융회사로부터 대규모 자본을 확충해 초기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뒤 연구개발에 속도를 붙여 빅파마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중소형 제약회사가 늘고 있다. 우리 바이오벤처의 초기 기술은 빅파마보다 이들 중소형 제약회사와의 매칭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세계 최초 기술(퍼스트인클래스) 집착에 대한 거꾸로 보기다. 필자가 해외 라이선스 담당자들에게 자주 듣는 요청사항은 “빠른 시간에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한국 바이오 기술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미 증명된 기술과 시장에서 기존 약물보다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계열 내 최고 기술(베스트인클래스)을 찾아달라는 뜻이다.
우리 바이오벤처의 세계 최초 기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최초보다 최고가 더 잘 팔린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