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로마 황제의 가격통제 시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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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로마 황제의 가격통제 시말서

디오클레티아누스(AD 284~305)는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중흥의 황제였다. 217년 카라칼라 황제가 죽고 그가 즉위하기까지 67년간 26명의 황제가 교체됐다. 평균 재임기간이 3년이 채 안 됐고, 대부분 전쟁이나 반란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페르시아 등 외적을 격퇴하고 내부 혼란을 수습함으로써 질서를 확립했다. 황제 혼자서 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로마를 동서로 나눠 4명의 황제가 협치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당연히 군대와 공무원 수도 늘었다. 1세기 25만 명이던 군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재임기에 60만 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군대와 공무원의 증가는 곧 막대한 재정 소요를 의미했다. 황제는 전례에 따라 은화에 구리 함유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통화 증발을 시도했다. 요즘 시대의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처럼 말이다. 1세기 초 은화의 순도가 95%였던 것이 4세기 초에는 1%로 떨어졌다. 동일한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동전이 필요했다. 요즘 말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병사들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황제는 구매력을 보장하기 위해 곡물, 비단, 노동자·교사 임금 등 1400여 개 물품과 용역에 최고가격을 매겼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통화 팽창이나 과다한 정부 지출로 보지 않았다. 물가 앙등의 원인을 로마의 도덕적 타락, 욕심 많은 상인과 매점매석하는 투기꾼 탓이라고 여겼다.

황제는 칙령을 내려 매점매석하는 자를 내부의 적, 또는 반란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통제가격보다 비싸게 팔거나 매점매석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경고했다. 여기에는 비싸게 구입하는 자도 포함됐다.

하지만 칙령은 곧 힘을 잃었다. 상인들이 더 이상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 암시장이 성행하고 물물교환도 늘었다. 해당 품목은 위험수당이 붙어 가격만 더욱 치솟았다. 이렇게 되자 정부의 세금 징수마저 힘들어졌다. 장거리 교역망이 무너지고 칙령에 반발하는 소요와 탄압으로 제국은 피로 물들어 갔다.

시민의 분노가 들끓자 정부는 기어이 희생양을 찾아냈다. 서기 303년 ‘기독교 대탄압(the great persecution)’이 그렇게 시작됐다. 교회는 초인플레이션 하에서 신도를 위해 물품을 일괄 구매하고 저장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당국은 이를 매점매석으로 봤고 반사회적 악행으로 간주했다. 로마의 전통 종교행사에 기독교인이 참여를 거부한 것도 빌미를 제공했다.

탄압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독교에 냉담하던 로마 시민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순교자를 보며 오히려 경외와 동정을 느꼈다. 황제는 가격통제도, 기독교 탄압도 실패하자 병을 얻었다(304년). 기회를 노린 부황제 갈레니우스가 퇴위를 압박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시대 이후에도 거의 모든 정부는 이런 ‘매점매석 투기꾼’과 싸웠다. 최근 이란 전쟁이 터지자마자 휘발유 가격부터 새로 써 붙이는 장사치도 없지 않다. 이들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투기꾼 역시 시장의 일부일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투기가 적정 가격을 찾아가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도덕 체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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