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AI가 부른 일자리 위기, 제도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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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AI가 부른 일자리 위기, 제도로 풀어야

인공지능(AI)을 두려워하는 시대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문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심지어 창의적 작업까지 수행하는 AI를 보며 인간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이 공포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4 대 1로 패했다.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간 지성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바둑마저 AI 앞에 무너졌다. 알파고는 인간이 수백 년간 쌓아온 전략을 뛰어넘는 수를 보여줬다. 인간이라면 쉽게 두지 않는 ‘비상식적인 수’는 이후 새로운 정석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세돌은 같은 장소에서 다시 AI 앞에 섰다. 이번에는 대결이 아니었다. 그는 AI 에이전트와 협업해 음성 명령만으로 30분 만에 바둑 앱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AI와 대국을 벌여 61수 만에 패배를 선언하며 말했다. “10년 전 우리는 AI와 대결을 했지만, 이제는 AI와 협업해 함께 나아가는 것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좌표다. 프로기사들은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키기 시작했다. 같은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약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경쟁 방식을 바꾸는 존재라는 점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AI와 싸워 이기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정해진 지식을 암기하고 표준화된 시험으로 줄 세우는 방식은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육은 학생들을 AI의 경쟁자로 만드는 교육이다. 이것은 구조적 실패다. 바둑을 교육으로 바꿔 읽으면 그대로 우리 학교 현장에 대한 진단이 된다.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읽고, AI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 이것이 다음 세대에 필요한 역량이다. 교육이 이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한 세대 전체가 노동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노동시장 역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현행 고용 제도는 한 직장에서의 장기 근속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여러 번 직업을 바꾸는 것이 표준이 된다. 직무 안정성 보호 중심의 제도는 이미 낡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용 보호가 아니라 전환 지원이다. 재교육 체계를 갖추고, 경력 이동을 돕고, 실직과 재취업 사이의 공백을 사회가 함께 감당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핵심이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AI를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인력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장기적으로 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생산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 직원이 AI를 활용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투자하는 기업만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핵심은 적응 속도다. 기술 발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 노동시장, 기업의 변화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속도의 격차가 불안과 충격을 만들어낸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는데 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경쟁의 본질이 바뀐다. 과거에는 어떤 나라가 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사회가 더 빠르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교육이 빠르게 바뀌고, 노동시장이 유연하며, 기업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나라가 AI 시대의 승자가 된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편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 분야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그리고 그 승부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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