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김철중]‘광학 단지’ 앞세워 떠오르는 우한… 中 ‘소부장’ 중심지로 주목

1 day ago 2

‘GDP 증가율 1위’… 후베이성의 중심도시 우한을 가다
소부장 산업으로 후베이성 급성장… 중공업 대신 소부장 기업 늘어
광학·배터리·반도체·자율주행 ‘메카’… 광학 산업 집중된 ‘우한 광구’ 주목
우한대 등 지역대학과 산학협력 활발… 미중 갈등과 기술 수출규제는 부담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는 우한시의 카일 옵틱스 본사에서 라이다 장비를 이용한 데이터 수집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는 우한시의 카일 옵틱스 본사에서 라이다 장비를 이용한 데이터 수집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고정밀 라이다(LiDAR) 업체 카일 옵틱스 본사. 1층 연구동 책상 위에 놓인 고정형 라이다 장치가 회전하며 사무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장비가 멈추자 수 초 만에 컴퓨터 모니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빨간색 점들이 5∼15㎜ 단위로 공간을 재구성해 냈다.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기자의 모습은 상의의 주름까지 정확하게 포착해 냈다.》

라이다 기술은 공간 지각과 측량 등 자율주행차와 스마트 제조 시스템 등을 제작하는 데 필수 장비 중 하나다. 로봇이나 생성형 인공지능(AI)처럼 일반인들이 직접 사용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산업계에서는 ‘미래 산업의 눈’으로 불릴 만큼 핵심 기술로 여겨진다. 차오판(曹凡) 해외총괄 디렉터는 “지난 수십 년간 고정밀 단선(single line) 라이다는 오스트리아나 독일 업체들이 시장을 독점했는데, 최근 중국 업체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만든 ‘고정밀 단선 라이다’는 드론 등을 이용한 항공 측정 작업에 주로 쓰인다.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회사에서 만든 ‘고정밀 단선 라이다’는 드론 등을 이용한 항공 측정 작업에 주로 쓰인다.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인근에 위치한 자잉 테크놀로지(珈鷹科技)는 드론에 설치되는 카메라 렌즈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회사다. 빠른 시간 안에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며 촬영할 수 있는 드론용 고속 기능 탑재 카메라를 생산한다. 드론에서 찍은 수십만 장의 사진과 위성 사진, 그 외 고정형 카메라 사진을 비교 분석해 0.1mm의 균열까지 찾아낸다. 업체 측은 “국가마다 측량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현재 개발한 데이터 수집 속도와 정밀도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첨단 ‘소부장 산업’ 앞세워 中 GDP 증가율 선두

이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우한은 중국 중부 후베이성의 성도다. 21일 중국 각 지방정부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1∼6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따르면 후베이성은 6.2%로 중국 전체 GDP 증가율(5.3%)보다 0.9%포인트 높았다.

중국 31개 지방정부 가운데 경제 규모 면에서 최하위 수준인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와 간쑤성을 제외하면 단연 1위다. 특히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동부 연안의 광둥(4.2%) 장쑤(5.7%) 산둥(5.6%) 저장(5.8%) 등이 모두 6%를 넘기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중 통상 갈등 속에서도 이처럼 후베이성이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탄탄한 제조업 덕분이라는 게 현지 산업계와 언론의 평가다. 특히 카일 옵틱스와 자잉 테크놀로지 같은 이른바 첨단 분야와 연관 있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약진이 지역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실제로 후베이성 정부에 따르면 상반기 첨단 산업 투자가 전년 대비 8.8% 증가했고, 첨단 제조업 부가가치도 14.4%로 증가해 GDP를 끌어올렸다. 기술력에 가성비까지 갖추다 보니 수출도 오히려 늘었다. 전체 수출액 중 절반을 차지하는 기계 및 전기 제품이 전년 대비 26.8% 급증한 것.

중국 본토의 중앙에 위치한 후베이성은 과거부터 자동차와 기계장비 등 전통 제조업이 발달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약 10년 전 중앙 정부가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 정책을 추진하자 빠르게 체질 개선을 꾀했다. 부가가치가 점점 낮아지는 내연기관차, 철강, 화학 등 중공업 비중을 줄였다. 그 대신 전기차, 광학, 반도체, 인공위성 부품 등 우주공학 회사들을 집중 육성했다. 그 결과, 후베이성 전체 산업에서 첨단 제조업 비중은 2012년 20% 미만에서 2018년 30%, 지난해 40%로 늘었다.

중국 최대 메모리 제조사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2016년 우한에 설립된 게 대표적이다. 중국 4대 내연기관차 회사인 둥펑(東風) 역시 2022년 후베이성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해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했다.

특히 우한은 자율주행 관련 업체를 집중 육성하고, 적극적인 규제 완화에 나선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한 도시가 됐다.

일각에선 선전, 항저우, 상하이 같은 연안 주요 도시들이 일찌감치 로봇과 AI 산업에 적극 나서고, 관련 기업도 유치하면서 우한이 소부장 산업에 집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로 인해, 확실한 산업 특성화와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많다.

● 산학협력으로도 역량 키워

이날 직접 방문한 두 기업은 국가급 첨단기술개발구인 둥후(東湖)첨단기술개발구에 위치해 있다. 광섬유 소재, 디스플레이, 렌즈 등 광학 분야 기업들이 몰려 있어 ‘광구(光谷)’로 불린다. 1991년 조성돼 30여 년 동안 전 세계 광전자 산업을 이끌어 왔고,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유니콘 기업 31곳, ‘국가급 전정특신’ 강소기업 173곳을 보유하고 있다.

기초 소재부터 부품, 관련 단말기, 완성품까지 광학 산업 생태계의 수직적·수평적 공급망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게 광구의 최대 장점이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관련 기업이 모여 있다 보니 직원 채용이나 거래처 확보가 쉽고, 개발한 기술을 바로바로 적용해 테스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 후베이성은 5년간 첨단 제조업 분야에 10조 위안(약 19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막대한 자금이 우한과 상양, 그리고 이창 등에 있는 첨단기술개발구에 세제 혜택과 지원금 형태로 쓰였다. 금전적 지원 외에도 입주 기업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한 교통망 구축 등도 이뤄졌다.

측량 드론 전문 업체 ‘자잉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고성능 카메라 드론.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측량 드론 전문 업체 ‘자잉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고성능 카메라 드론. 우한=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광구는 우한대와 화중과학기술대 등 중국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대학들과도 인접해 있다. 특히 우한대는 우주공학과 정밀 측량과 관련된 원격탐사 분야에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측량 드론 업체인 자잉 테크놀로지는 우한대 출신 교수들이 창업했고, 현재 연구직원 중 70%가 우한대 등 우한 지역 대학 출신이다. 중국 대표 가전·전기차 업체인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회장도 우한대 출신이다.

화중과학기술대의 집적회로학과는 후베이성 일대 반도체 기업의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한다. 올해 2월에는 미국 애플 연구원 출신인 왕환위(王寰宇)가 집적회로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화중과학기술대 출신인 왕 교수는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2021년부터 애플의 고성능·저전력 중앙처리장치(CPU) 설계를 담당했다.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의 김종문 센터장은 “후베이성은 우한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 우수 인재, 그리고 산업 인프라가 잘 융합된 지역으로 중국 첨단 제조업 성장의 삼박자가 갖춰진 요충지”라고 말했다.

● 미중 갈등과 늘어난 기술 규제에 우려 커

우한을 중심으로 한 후베이성의 소부장 기업들도 미국과 유럽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관련 규제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에 대해선 적잖은 부담을 느낀다.

미국 상무부 등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산 소프트웨어와 첨단 산업 부품들에 대한 수입 금지 등 규제를 늘려 왔기 때문이다. 광학 관련 부품과 장비, 카메라, 라이다, 센서 등도 주요 모니터링 대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중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무역 갈등 등이 심해지면 어떤 형태로든 중국 소부장 기업들의 타격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한에서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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