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사업 중요성 간과·최저가 입찰…안전 놓쳤다

1 month ago 7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사진= 전자신문 DB]국가정보자원관리원. [사진= 전자신문 DB]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참사는 부실한 발주부터 문제였다.

국가 행정시스템의 심장을 다루는 고위험 IT 프로젝트를 '전기 공사' 수준으로 취급했고, 기술력보다 가격을 우선하는 입찰 방식을 통해 비전문 업체를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국정자원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재배치 관련 건축시방서와 공사입찰설명서 등을 확인한 결과 사업의 중용성과 위험성, 전문성을 간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범위를 '부스덕트(배선통) 및 배선 공사'와 같은 물리적 설치로 한정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일반 건축 현장 수준의 안전 관리 내용만 담겼고, 작동 중인 IT시스템 환경에서 작업 위험 관리나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문적인 취급 방안 등은 요구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시스템들이 작동 중인 상황에서 작업을 할 때는 모든 절차와 위험요소, 복구 계획 등을 전부 담은 '작업절차서' 제출이 일반적”이라며 “반면에 국정자원은 일반 건설 현장 수준의 계획서만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사업자 선정 방식도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정자원은 '적격심사 후 최저가 낙찰' 방식을 택했다. 전기공사업 면허 등 최소한의 자격 요건만 갖추면, 가격 경쟁을 통해 사업을 따내는 구조다. 대전 소재 영세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된 이유다.

국정자원 직원이 담당해야 할 감독 의무 조항마저 허술했다. 예를 들어 '감독관이 지시해야만 (감독관이) 현장에 입회한다'는 식이었다. 즉, 감독관 스스로 '입회할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배터리 설치 같은 위험한 작업도 업체끼리만 진행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감독관이 리튬이온 배터리 설치와 같은 고위험 작업을 '별도 지시가 필요 없는 가벼운 공정'으로 치부하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라며 “국가 핵심 시설의 심장부를 다루게 되는 사업인데도, 관리 감독 장치가 허술하다”고 했다.

국정자원의 부실한 발주 실태는 UPS 재배치 사업을 추진한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 사례와 대비된다.

K-SURE는 국정자원이 놓친 모든 안전장치를 꼼꼼하게 요구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예방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 대표적이다. K-SURE는 '도입 장비의 과전류·과전압 대책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기존 노후화된 UPS용 리튬이온 배터리 정전 보상시간(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기 전까지 정상 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 60분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혹시나 작업 과정에서 리튬 배터리가 작업자 실수로 단락(쇼트)될 경우 발생할 열폭주 위험을 원천 차단하려는 강력한 조치다.

감독관의 현장 입회 역시 재량이 아닌 '의무' 조항으로 못 박았다. 무엇보다 사업자 선정 방식을 기술능력 평가부터 먼저 진행하는 '제안 입찰' 방식을 택했다.

IT서비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정자원이 자칫 화재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 마비 사태가 불거질 수 있는 사업을 너무 안이하게 진행한 것”이라며 “차제에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발주 기준을 마련하고 리튬이온 배터리 안전 표준과 관리 감독 의무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