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한 과학자 개인의 영광이자, 한 사회가 얼마나 묵묵히 오랜 세월 기초과학을 존중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다.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구의 토양을 다져온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해마다 10월만 되면 과학을 말하고, 나머지 11개월 동안은 연구 현장을 잊는다. 그나마 과학을 말할 때조차도 늘 단기성과에 조급해하며, 연구는 ‘성과관리 프로젝트’처럼 취급한다.
최근 국감에서 다시 도마에 오른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은 그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2024년도 국가 R&D 예산은 전년 대비 16.6% 줄어든 25조9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첫 대규모 감액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비효율과 카르텔을 걷어내야 한다”고 지시하자, ‘제로베이스’식 개편이 추진된 결과였다. 대통령실 주도로 급하게 진행된 예산 삭감은 절차적으로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과학계에 큰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연구 과제가 감액 또는 중단됐고, 인건비가 삭감된 연구실은 연구원을 떠나보냈다. 올해 만난 한 과학인은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R&D 예산은 삭감되지 않았다”라며 “많은 청년 연구자들이 ‘예산 효율화’에 떠밀려 갈 곳을 잃었다”며 한탄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과학인재 스카우트 전쟁이 한창인데 한국에선 거꾸로 R&D 예산마저 삭감되니, 인재 이탈은 가속화됐다. 실제로 올 5월 본보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진행한 공동 설문조사에서 국내 이공계 석학 200명 중 61.5%가 최근 5년 사이 해외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고, 그중 42%가 실제로 수락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장기 지원, 그리고 ‘실패를 기다려주는 제도’가 있다는 이유였다. 최근에도 국내 유명 석학들의 중국행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다행히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19% 늘어난 35조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국내 과학자들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고 이공계 인재 정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끊겼던 연구를 다시 본궤도에 올리고, 인재를 되찾는 데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나아가 과학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과학자들은 장기 연구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한국을 ‘머물기 힘든 나라’로 여기고 있다.
연구비를 줄이고, 인재를 지키지 못한 채 “언제쯤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까”를 묻는 건 공허할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노벨상을 원한다면, 10월이 아닌 나머지 11개월 동안 과학을 이야기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실패를 견디는 시스템, 연구자를 신뢰하는 사회를 조성하고 과학을 정치의 도구가 아닌 ‘국가의 언어’로 삼아야 한다. ‘반짝 관심’이 아닌 축적의 시간, 그게 한국 과학을 세계 중심으로 끌어올릴 길이다.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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