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민아]닷컴 버블에서 배우는 기업들의 AI 버블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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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산업1부 기자

이민아 산업1부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주가 주도하는 미국 증시의 상승세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BOE)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AI 관련 기술주의 급등세가 과거 정보기술(IT) 기업이 주도했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AI 열풍의 중심에 선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조차 “현재 AI 붐의 상당 부분은 거품”이라고 말했다.

이를 수치로 보면 현실감이 더해진다. 워런 버핏이 ‘밸류에이션을 보여주는 최고의 단일 지표’라 부른 ‘버핏 지수’는 지난달 200%를 돌파했다. 한 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으로, 닷컴 버블기(약 140%)를 훌쩍 넘어선 수준이다.

최근의 AI 투자 열기는 마치 닷컴 버블이 재현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차기 대박을 노린 자본은 기업 이름 뒤에 ‘닷컴(.com)’만 붙어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기업 가치는 현실의 수익이 아닌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를 사업 모델’에 근거했고, 투자자들은 기대감에 베팅했다.

그러나 실체 없는 사업 모델 대부분은 거품이 꺼지면서 사라졌다. 대표적인 기업이 1990년대 후반 사업을 시작해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했던 미국의 ‘펫츠닷컴(Pets.com)’이다. 반려동물 업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도메인 이름을 토대로 투자를 받았지만 소비자를 위한 구체적인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면서 투자 이후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반면 막연한 기대감보다 구체적인 사업성을 바라보고 투자를 이어간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었을지언정 생존했다. 아마존은 ‘쇼핑’, 구글은 ‘정확하고 폭넓은 검색’이라는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용자가 매일 찾을 수밖에 없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기업만이 버블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들은 현란한 겉치레 대신 시장의 현실적 문제를 겨냥했고, 이용자가 반복해 찾는 구조를 만들었다. 결국 소비자 본인도 몰랐던 필요를 찾아내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기업의 역량이었다.

AI 버블론이 다시 불거진 현 상황도 비슷하다. ‘우리도 AI를 한다’는 과시보다, 일상 속 불편을 덜고 효율을 높이는 진짜 기술이 경쟁력이다. 최근 AI는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생활을 바꾸고 있다. SK그룹의 한 계열사는 최근 AI 동영상 생성기를 활용해 사내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과거 수억 원이 들던 프로젝트를 월 20만 원 구독료로 대체했고, 등장인물과 대본, 애드리브까지 모두 AI가 자동으로 완성했다. 제작비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품질까지 유지했다. AI는 이미 기대를 넘어 기업 현장에서 생산성 개선의 도구가 됐다.

닷컴 버블 때 주목받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사라졌지만, 버블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빅테크’로 자리매김해 다가올 AI 시대의 토대를 마련했다. 닷컴 버블을 이겨낸 승자였던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AI 산업은 분명 버블이지만 기술 자체는 진짜”라고 말했다. 거품은 사라져도, 현실의 문제를 가장 정교하게 풀어내는 기업은 AI 시대의 진짜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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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산업1부 기자 om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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