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슬픔의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392〉

3 weeks ago 10

빈센트 반 고흐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무려 43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다. 이견은 있지만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자화상’(1889년·사진)이 그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글거리는 듯한 푸른색 배경에 푸른 정장을 입은 모습이다. 그는 왜 이런 자화상을 그린 걸까?

가난과 광기 속에 살았던 고흐는 종종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그림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모델료가 들지 않는다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이 그림은 그가 1889년 9월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에 그렸다.

그림 속 화가는 즐겨 입던 작업복이 아닌 정장 차림이다. 화면에 보이는 그의 왼쪽 얼굴은 사실 오른쪽 얼굴이다. 자해로 훼손된 왼쪽 귀가 보이지 않게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얼굴은 뾰족하고 수척하며 눈빛은 완고하고 불안해 보인다. 얼굴과 옷, 배경에 드리운 초록색은 그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 색을 연상시킨다.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이글거리는 배경의 문양과 옷 주름은 극도로 불안한 화가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청록색 톤이지만, 수염과 머리카락은 보색인 주황색을 써서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마치 발작과 정신적 고통으로 괴롭지만, 창작의 열정은 여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지만, 매 자화상은 고흐에게 큰 도전이었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을 아는 것만큼이나 자화상 그리기가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누이에게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사진사가 얻어내는 것보다 더 깊은 닮음을 찾고 있다”고 썼다.

이 그림 속에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담았다고 판단했던 걸까? 이후 고흐는 더 이상 자신을 그리지 않았고, 이듬해 여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어가면서 테오에게 “내 슬픔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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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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