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법적 다툼에 직면한 '보이스피싱 무과실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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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23 17:34 수정2025.09.23 17:34 지면A31

정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금융회사 무과실 배상책임제’ 도입 방침이 결국 은행 등 금융회사의 반발에 직면했다는 한경 보도(9월 24일자 A1, 17면)다. 정부는 당시 보이스피싱 대책의 하나로 금융회사의 과실 책임이 없더라도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올해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금융회사들은 발표가 나자마자 과도한 입법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은행연합회도 로펌 한 곳과 계약을 맺고 법률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은행권은 특히 무과실 배상 책임이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민법 390조는 채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정하고 있는데 고의 또는 과실을 성립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민사소송에서는 배상 판결이 나오려면 피해를 봤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은행권 일각에선 정부 예고대로 입법이 강행되면 중대재해처벌법보다 더한 일방통행 법안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중대사고가 나더라도 처벌을 면하지만, 이번 보이스피싱 대책에선 금융회사가 아무리 예방 노력을 다하더라도 일단 사고가 나면 금융회사에 배상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제도 도입 사례로 든 영국도 100% 무과실 배상 책임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영국에서 은행이 어느 정도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객이 ‘명백히 중대한 과실’을 저지른 경우엔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명백히 중대한 사실이란 은행이 수차례 경고를 보냈는데도 범죄단체에 송금한 경우 등을 가리킨다.

아무리 보이스피싱 범죄가 심각하고 정부가 면허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금융회사에 지우는 의무엔 한도가 있어야 한다. 선을 넘어서면 예상치 못한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금융회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보이스피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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