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알고리즘을 이기는 사유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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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톡톡] 알고리즘을 이기는 사유 습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뇌 썩음(brain rot)’. 끊임없이 쏟아지는 저품질 콘텐츠에 노출되면서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뜻한다. SNS 릴스를 한 시간째 봤는데도 막상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기분, 모두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인간만 이런 현상을 겪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에 X(옛 트위터)의 짧고 자극적인 게시물을 계속 학습시킨 결과 추론 능력은 74.9점에서 57.2점, 긴 문맥 이해 능력은 84.4점에서 52.3점으로 급락했다는 논문이 최근 공개됐다. 인공지능(AI)조차도 어떤 데이터를 학습하냐에 따라 능력이 퇴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회수와 ‘좋아요’가 많은 인기 트윗일수록 AI를 더 멍청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단순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의 파괴력을 증명한다.

이런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고 빠져든다. 어떻게 해야 조회수가 잘 나오는지, 첫 3초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내가 만든 영상이 화제가 되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사실 긴 글, 다큐멘터리, 심층 인터뷰, 책 등 깊이 있고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콘텐츠는 지금도 넘쳐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을 뿐이다. 플랫폼은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콘텐츠보다 다음 영상을 보게 만드는 콘텐츠를 먼저 노출한다. 그 결과 생산자는 알고리즘에 맞추는 법을 배우고, 소비자는 생각을 AI에 외주 주는 게 현실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에 따르면 챗 GPT 등을 사용한 학생들의 뇌 연결성이 최대 55% 감소한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를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라고 했다. 당장은 편리하지만 장기적으로 사고 능력을 갉아먹는다는 뜻이다. 계속 AI에 사고를 외주 주면 우리의 인지능력은 지속해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학습할 수밖에 없는 ‘입력값의 노예’지만 우리는 다르다. 무엇을 볼지, 무엇으로 생각을 채울지 선택할 수 있다. 릴스를 한 시간 보는 대신 에세이 한 편을 읽을 수 있고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앞으로는 추론하고 깊게 생각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맥락을 이해하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고,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는 건 인간 몫이다. 문제는 이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큐멘터리나 심층 기사를 보는 ‘능동적 소비 시간’을 하루 30분이라도 따로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긴 글을 읽으며 요약본을 만들거나 주제에 대해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는 습관도 괜찮다.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것도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필요한 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다. AI도 걸리는 뇌 썩음,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우리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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