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민호가 뛰어온다. 나는 사무실 창밖을 보면서 '나는 잘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거듭 확인하듯 되뇌고 있던 중이였다. 휴대폰 화면은 내가 관여된 일들로 메시지와 뉴스가 가득하고, 사회적 논란이 된 정책, 여러 집단의 이익 충돌, 내가 손해 보기 싫어 진실을 외면하는 말 같지 않은 말들, 그 많은 사건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 나는 언제나 그랬듯 그 질문을 외면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도 바쁘고, 중요하며,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다. 내 위치가, 내 역할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는 잘하고 있다.'
민호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민호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 완벽했다. “오늘도 좋은 아침이십니다, 대표님.”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민호는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정확히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그는 늘 최선을 다해 나를 보좌하는 참모다. 언제나 든든하고 믿음직하다.
하지만 민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권력은 내게 너무나 유용한 도구다. 대표님이 책임을 떠맡는 동안 나는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된다.' 민호는 자신의 욕망을 잘 숨겼다. 누구보다 도덕적인 모습으로 행동했고, 항상 그럴듯한 명분을 준비해놓았다. 정수는 민호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 민호가 원하는 건 언제나 권력이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선영이 있다. 과거 사회운동의 상징이자 정의의 목소리였던 그녀는 이제 현실과의 타협 속에 익숙해져 있다.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굳건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밤마다 조용히 자신과 싸우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해. 나는 타협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선택한 것뿐이야.'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상진은 화려한 권력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삶을 보냈다. 불합리한 세상과 맞서 싸웠고,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애초에 그를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후회가 없었다. 그는 늘 말하곤 했다. “나는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었을 뿐이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나로 살아간다.”
상진이 어느 날 길 위에서 소영을 만났다. 소영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적인 기자였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하지만 그녀의 기사는 늘 권력의 무게에 눌려 무시당했다. 상진은 소영을 위로했다. “진실이란 원래 외로운 법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하기도 하지요.” 소영은 씁쓸히 미소 지었다. “근데 선생님. 왜 세상은 듣지 않을까요? 왜 사람들은 진실 앞에서 눈을 감는 걸까요?” 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작은 카페에서 한 노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은 끝까지 깨닫지 못했지. 자신이 권력에 취해 있다는 걸. 책임 없는 권력이란 다른 탐욕의 이용 대상이고, 혼란의 씨앗이라는 걸 말이야. '사회를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내가 해야만 한다는 욕심의 결과이지.”
젊은이가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죠?” 노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게 중요한가? 사실 그 사람은 누구라도 될 수 있네. 어쩌면 나일 수도 있고, 자네일 수도 있지. 누구나 다 그런 순간을 한 번쯤은 경험하니까.
“책임 없는 권력에 취한 이들은 결국 자신마저 갉아먹고 말지.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신을 잃은 거라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책임 없는 권력자들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